나의 사이버 교실/01 공부 잘 하는 비결

"공부"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DoDuck 2006. 5. 16. 03:46

  공부 잘하는 비법을 이해하려면 먼저 ["공부"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육상선수에게 달리기의 의미는 일반 사람들의 달리기의 의미와 다르다. 일반인들에겐 달리기란  '빨리 가는 것, 뛰어 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기껏해야 '두 발을 움직여 가되, 두 발이 동시에 땅에 닿지 않게 가는 것' 정도의 답이 최선이겠지만, 육상선수에게는 "발은 어떻게 움직이고, 팔은 어떻게 움직이며, 상체는 어떻게 움직이고, 머리는 어떻게 하며,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며..." 움직이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육상선수에게는 이 정도의 의미가 각인되어야 달리기를 잘할 수 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국어사전(일반인들의 설명)에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거나 닦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무엇을?   - 학문과 기술을

      어떻게?   - 배우거나 닦음

  그러나, 이것은 일반인들의 대답. 우리는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해야 한다.

  배우거나 닦는다는 표현을 좀더 세밀하게 묘사하여 "내가 나의 무엇을 어떻게 움직여 어떤 결과에 이르는 것"이 공부라고 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나는 공부를 '학(學)'과 '습(習)' 두 개의 과정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이러한 정의를 내리기까지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지, 과거 인수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학생들에게 했던 공부의 국어사전적인 의미에 대한 자세한 분석적 설명을 다시 보여주고 싶다. 상당히 긴 내용이지만 덧붙인 글을 읽고 참고하시기를...)

     학 : "?"에서 "!"까지 가는 여행

    습 : 그 미로를 눈을 감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도록 하는 일

 

  나는  여러분들이 이 정의를 바탕으로 "내가 나의 무엇을 어떻게 움직여 어떤 결과에 이르는 것"이 공부라고 할 수 있는지 더 깊이 생각해보기를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 옛 인수중 자료>

 

공부가 뭐냐? 이런 형식의 질문에는 너무 다양한 방식의 대답이 가능합니다. 비유적인 표현, 사전식 설명, 만담풀이 등등. 그래서 선생님은 "공부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묻습니다. 좀더 명확하게 생각해보자는 취지지요. 자, 생각해봅시다. 공부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혹시 "괄호넣기"가 나오면 마우스로 긁어가며 읽어보세요. 링크로 연결시킨 글들은 모두 DAUM 국어사전의 설명입니다. 링크로 연결된 곳을 클릭하여 해당 낱말의 의미를 확인하여 보십시오.)

 국어사전의 설명은 대체로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갈고, 닦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선생님은 이런 방식의 설명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학문이나 기술"만 언급하고 "도리(道理)"에 대해선 말이 없는 걸까요? "도리(道理)"란 게 학문에 속하는 것인가요? 기술에 속한 것인가요? 왜 "도덕"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까?

  사람들의 짧은 생각(短見)에 대해서도 살펴볼까요? 사람들은 흔히  공부란 "책을 읽거나 보거나 외우는 것"이라거나 "연습문제를 풀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혹시 만화책을 읽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수수께끼 놀이를 공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물론 선생님의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예, 있습니다"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긴 있습니다. 만화책을 보는 것도 공부요, 수수께끼 놀이도 공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의 도덕이나 도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요. "공부란 인격을 수양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이런 대답들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보아야겠지만, 우선 선생님이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무엇을"에 대해서 그 구체적인 항목을 늘어놓는 방식을 피하고 싶습니다. '학문이나 기술"이라는 매우 포괄적인 설명도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닦아야 할 모든 것을 다 포괄해주진 못합니다. 만화책을 보는 것은 공부가 아니요, 참고서를 보는 것은 공부라는 식의 생각은 "책"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책에 담겨 있는 내용"에 따라, 공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공부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오늘날 가면 갈수록 배우고 익히고 닦아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에서, 도대체 어떤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공부라고 할 수 없고, 어떤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공부라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사고방식은 공부라는 말을 너무 지나치게 좁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요즘은 "노는 법"까지도 배워야 하고, 옛날에도 "주도(酒道)"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술마시고 노는 것"도 가르치고 배워야 할 "한 분야"라면, 그런 것을 배우는 것은 "공부"가 아니고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공부라는 말의 핵심은 그러니까 "무엇을"에 있지 않고 "어떻게"에 있습니다. 공부라는 말은 그 대상이 중요한 핵심 개념이 아니고 "어떻게 하는 것이냐" 몸이나 마음의 움직임이 중요한 핵심 개념이란 말입니다.

 선생님은 그래서 몸이나 마음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무엇을"을 밝혀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배우고"라는 말을, "익히고"라는 말을, "갈고"라는 말을, "닦는다"는 말을 더욱 깊이 음미하여, 이것을 통해서 "어떻게"를 깨우침과 동시에 "무엇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해보자는 얘깁니다.

 먼저 "갈고"에 대해 얘기합시다. 사실 "공부"라는 말을 설명하면서 "갈고"라는 말만 따로 사용하는 예는 거의 없습니다. 예외없이 "갈고 닦는다"는 표현을 쓰지요. "갈고 닦는다"는 말의 사전풀이는 다시 "배우고 익힌다"는 말로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길게 설명할 것이 못됩니다. 다만 인격에 대해서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때는 "도야(陶冶)"라는 말과 같은 의미의 표현으로 이해하기 바랍니다. "도야"란 사람이 인격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옛날 대장간에서 쇠를 담금질하여 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나, 도자기 공장에서 흙을 빚어 도자기를 구워내는 과정에 비유한 표현인 것이지요.

 이 정도면 "닦는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슬쩍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닦는다"는 말은 "갈고"라는 말과 떨어져 혼자서도 잘 쓰입니다. "학문을 닦는다"는 표현을 쓰지요. 발음이 오해를 일으키기 쉽습니다만, 어쨌든 "닦는다"는 표현은 "도(道)"라든지, "학문"이라든지, "인격"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에 대해서도 일단 사전풀이를 참고 하십시오.

 선생님은 사전의 여러 가지 설명 가운데 "길을 닦는다"는 표현에 대한 설명에 대해 주목하고 싶습니다. "도를 닦는 것"은 "길을 닦는 것"일텐데 그게 어떤 뜻일까? 그것은 도로를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다니기 힘든 길을 다니기 편한 길로 만들어 내는 것이 "길을 닦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은 곧 "개척"의 의미와 연관이 있지요. 그래서 사전풀이의 여섯 번째 설명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쨌든 다섯 번째의 설명에서 다시 "배우고 익힌다"는 말로 또 연결됩니다만, 선생님은 학문을 닦는다는 표현은 여러분같은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가르쳐야 할 내용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지혜, 새로운 도리를 밝혀 내는 사람들에게 "학문을 닦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이지요.

 어쨌든 공부라는 말의 사전풀이를 이렇게 저렇게 해보니 거의 모두 "배우고 익힌다"는 말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말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배운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다시 사전풀이를 참고할까요?

   자, "배운다"는 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까? "경험을 하는 것"입니까? "보고 듣는 것"입니까?

 사실상 이러한 것들은 어떤 과정에 불과합니다. 배우는 방법이지요. 중요한 것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받아 그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니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니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니하는 말들은 "가르침을 받는 것, 보는 것, 듣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배운다"는 말의 핵심은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당연히 몰랐던 것입니다. 배우려는 사람이 궁금해 했던 것입니다. 관심을 갖게 된 어떤 문제였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무엇인가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선생님과 수업시간에 같은 교실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선생님 덕분에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오로지 궁금했던 것이 "이 지겨운 설교가 언제 끝나나? 끝종이
울리려면 몇 분 남았지?" 이런 문제였던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전혀 배우지 않은 친구들입니다.

 "배운다"는 말에는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홀로 명상을 통하여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생긴 질문이든지 그 질문의 해결책을 이미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었고, 우리는 그 존재와 만남으로써 해결책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말을 예로들어 반론을 제기하는 친구들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직접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때 그 해결책을 이미 가지고 있는 존재는 누구냐"는 질문이지요. 선생님은 이런 경우에도  그 경험을 특별히 하도록 만들어 준 어떤 존재, 그 경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인도해준 어떤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할 것이지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은 어려운 설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배운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가며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생각들을 하나의 간결한 표현 속에 담아두고자 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 "?"에서 "!"까지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물음표에서 느낌표까지의 여행 그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이제 "익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봅시다.

"익힌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해 왔던대로 우선 사전풀이를 참고해봅시다. 사전의 여러 가지 의미 중에 가장 통하는 의미는 "익숙해지도록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익숙하다"까지 찾아볼까요? 아마 이 정도면 뜻을 이해하는데는 충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래서 배움과 익힘을 이제 통합하여 공부를 설명합니다. 이렇게 정리합니다. "공부"란 "물음표에서
느낌표까지 떠나는 여행, 그 미로를 눈을 감고도 찾아갈 만큼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가는 것."
이 문장을 완전히 머릿속에 집어 넣어 둡시다. "공부"란 "물음표에서 느낌표까지 떠나는 여행, 그 미로를 눈을 감고도 찾아갈 만큼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가는 것."

   자, 이제 완전히 머리에 담아 두었습니까?   이제 "공부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직 마음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익힘"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새겨보았으면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익힐 습(習)". 이 글자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를 여러분이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은 "익힌다"는 말의 사전풀이에서 "날 것을 뜨거운 기운으로 익게 한다"는 말에 대해 주목하고 싶습니다. 어떤 것을 강제적으로 주입시켜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무엇인가가 우리들의 세포 하나하나에 배어들어 우리가 그것에 길들여지는 것.

 선생님은 일종의 조건반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익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건반사가 뭐냐구요? 백과사전의 설명을 참고하세요.

 곰을 북소리에 맞춰 춤추게 하는 방법에 대해 들은 바 있습니다. 철판 위에 곰을 올려놓고 밑에서 불을 때면 곰이 "앗, 뜨거워" 발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동작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 동작에 맞춰 북을 칩니다. 어느 정도 북소리가 발을 떼도록 하는 신호로서 곰의 머리에 배어들었다고 생각될 때쯤, 철판은 식혀가되 북소리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들려줍니다. 그러면 곰은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된답니다.

  유명한 김유신의 일화가 있습니다. 김유신이 자신의 애마를 목을 벤 사연을 아십니까? 김유신의 말은 일과가 끝나면 김유신의 애인의 집으로 향하는 행동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삐를 쥐고 있는 김유신의 의지에 의해 그 행동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지요. 그러나, 어느날 고삐를 쥐고 통제하던 김유신이 술에 취해 졸았고, 고삐를 쥐고 통제하지 않자 말은 몸에 밴 대로 애인의 집을 향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김유신을 여러분의 의식(意識)이나 의지라고 생각해보고, 말을 여러분의 몸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습관이란 무엇입니까? 몸에 밴 행동방식이 습관 아니겠어요? 조건반사화된 행동방식. 바로 그것이 버릇입니다. 습관입니다.

  이제 좀더 학습, 공부에 가까운 예를 들어볼까요?

 야구선수가 안타를 치기 위해선 어떤 자세로 타격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이론적인 설명을 듣습니다. 그 선수는 그 설명을 알아들었지만 곧바로 타격성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배팅연습 후에야 성적이 올라가지요. 그 배팅연습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수한 반복연습을 통하여 일정한
타격폼을 몸에 배어들 게 만드는 훈련 아닙니까?

   공부를 지겨워하는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각해보면 바로 이 과정에서 싫증을 느껴 버린 친구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데 그 길을 완전히 눈을 감고도 몸이 알아서 움직여가도록 익숙해지려면 얼마나 그 길을 반복해야 할까요? 아마 질려 버릴 것입니다. 운동을 하겠다고 나선 많은 친구들이 바로 이 과정에서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우는 것이 자신 없다는 친구들이 있지요? 바로 그 친구들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