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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치아카데미 4강 [기독교 전래와 분열의 역사]

DoDuck 2015. 3. 4. 13:55

몸이 매우 아파오던 때라서, 듣고 메모는 열심히 하였지만 정리는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아직도 진료일정만 세워놓고 치료에 들어가지 못한 탓에 제대로 정리해 낼 자신이 없는 상황인데, 이제 5강이 당장 내일로 다가오면서 "숙제로다!" 한숨을 쉬며, 강의안의 메모를 다시 읽어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강의내용을 재정리해서 전해드리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되어 인상적이었던 몇가지 주제만 정리해볼까 합니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정신차릴 수 있었던 것은 몸이 제 스스로 치유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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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의 강사는 이화여대 교수이신 양현혜목사님이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기독교의 역사를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로 나누어 각각 살펴보고 개신교의 분열과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운동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이었는데, 개신교 분열의 역사와 일치운동의 어제와 오늘은 길게 말씀하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양교수님은 우리나라에 전래된 천주교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예수회가 아니라 파리외방선교회가 맡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1831년 조선 교구가 설립되고 파리외방선교회가 조선교구를 담당하였는데 파리외방선교회는 예수회와는 달리 인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하여 순교밖에 모르는 선교회였다고 혹평을 하셨습니다.

교수님은 "국가가 제 역할을 했다면 한국에서 기독교가 그렇게 부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 안중근의 순교와 독일 본회퍼의 순교를 함께 떠올리게 하셨지요. 안중근 의사의 아들들과 관련된 '박문사의 화해'라는 드라마같은 얘기를 전해주시며, 가족을 지켜주지 못한 민족사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천주교나 개신교나 기독교는 민족사에 지고 있는 빚이 있으며 그 채무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일깨워주셨지요. 일본의 근대는 번역의 근대였다면서, 번역이 부족한 탓에 인문학적인 축적이 부족한 우리문화계에 대해 한숨을 쉬었습니다. 개신교가 기여한 가장 큰 문화적 역할은 한글전용이었다면서 1898년 갑오개혁으로부터 비로소 공식문서에 한글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생각할 대 한글의 역사가 사실상 일천한 것임을 지적해주었습니다.

3.1운동에 개신교의 참여가 매우 돋보이는 것이었지만, 그 후 3.1운동을 실패로 인식하였고, 그 실패를 살아내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탈역사화, 탈정치화 해나가면서 신비주의, 종교적체험에 몰입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해방 이후의 남북상황과 독일을 비교하면서, 북한에 있었던 개신교세력의 남한 탈출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얘기들을 흥미진진하게 해주셨는데 모두 담아낼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종교는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말하는 것이나, 한국의 종교는 이런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비판에 공감하였습니다.

교수님의 강의 덕분에 그동안에 이름을 외우지 못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이날 강의가 끝나고 안내된 [일치아카데미 카페]를 통해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정교회 박인곤요한보제님(암브로시오스대주교님 말씀을 통역해 주신 분으로, 정교회에서는 직제가 주교-사제-보제 등으로 구분되나봅니다.), 실무책임자 중 한 분인 김태현 사무국장님 등입니다.

열강을 해 주신 양현혜교수님이십니다.

출처 : 평화를 만드는 교회
글쓴이 : DoDuck강형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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