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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치아카데미 3강 [다양한 교회인가, 하나인 교회인가?], 그리고 희망연대노조 고공농성장 방문

DoDuck 2015. 2. 13. 14:24

2월 12일 목요일 일치아카데미 4번째 만남, 제3강 [다양한 교회인가, 하나인 교회인가?]

이날은 강의만 달랑듣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한 시간 전에 미리 와서, 간단하게 빵과 김밥을 먹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고 한 날이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서 롯데백화점앞 정거장에 내리려니 중앙우체국앞 전광판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LG U+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노동자들(희망연대노조)이 보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요.

강의실에 들어서니 과연 일찍들 와서 둘러앉아 고로케며 샌드위치, 김밥, 귤, 음료 등을 들면서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정교회 부제님(암브로시오스대주교의 말씀을 통역해 주신 분인데, 아직도 성함을 모릅니다.ㅠㅠ)에게 우리나라 정교회의 역사를 전해들었구요, 대구에서 오신 복음교회 목사님께 복음교회 이야기를 조금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교회는 1890년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러시아로부터 전해진 탓에 러일전쟁과 해방후 분단의 역사속에서 교세가 확장되지 못하고, 6.25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그리이스의 종군사제의 헌신으로 다시 힘을 얻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하네요. 복음교회는 우리나라의 자생적인 교단으로 김교신 선생님과 함께 활동했던 최태용목사님이 일으킨 "조선인 자신을 위한 교회"라고 합니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 실무책임자(이분도 아직 성함을 모릅니다. 제가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요.ㅠㅠ)의 안내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짧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운동과 실천이 있었는지, 그 노력이 오늘날 왜 큰 물줄기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강의를 해주신 목사님은 장신대 교수(교회사)이신 안교성목사님으로, 목사님은 다양한 교파들과 얽힌 당신의 삶의 궤적을 먼저 간략히 얘기해주셨습니다. 유년기까지 부모를 따라 고신측 교회를 다니다가 서울에 와서는 통합측 새문안교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모양입니다. 고등학교를 추첨에 의해 배재로 다니게 되면서 감리교인 정동제일교회를 다니기도 했고, 대학(프로필을 보니 서울대영문과를 졸업하셨네요)시절에는 천주교 영세를 받기 위해 교리공부를 하던 친구가 혼자 가기 쑥스러워해서 함께 천주교 교리공부도 했답니다. 영세를 받진 않았지만. 후에 장신대와 캠브리지 신학부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마치고 장신대교수로 재직라다가 몽골선교사로 9년을 몽고에 있었고, 다시 돌아와 장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답니다.

목사님의 강의는 강의안을 따라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보충설명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질의응답시간을 가졌습니다. 학교에서 에큐니메니칼운동사를 15회에 걸쳐 하는 강의인데, 1회 강의로 모두 마치니까 오늘 강의 내용을 모두 잘 알아들었다면 학생들보다 15배는 똑똑한 셈이라며 웃었습니다. 강의안의 제목만 나열해도 한쪽 분량은 충분히 나올만한 방대한 내용인데, 그걸 다 얘기하려니 한숨이 나오네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주요 흐름, 천주교의 대응,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두와 그 흐름을 대충 알기쉽게 요약해 주신 것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내용을 쉽게 정리해 주시고 질의응답 시간까지 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종교개혁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신앙인식에 대한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는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대답을, 신앙인식에 대해서는 각 개인의 능동적 탐구- 곧 '성경연구'라는 답을 제시하며 '오직'의 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개신교의 '오직'의 신학과 대조하여 천주교는 '그리고'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경'과' 전통, 믿음'과' 행위, 자연'과' 은총 등을 강조하지요.

루터는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여 '이신칭의'- '오직'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내세우면서 다른 비본질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가톨릭과 유사한 루터교가 세워졌는데, 칼뱅은 공교개혁의 신앙 및 신학을 집대성하면서 가톨릭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개신교적인 교회의 틀을 세웠습니다. 주교를 중심으로 한 위계적인 교역자 중심의 교회가 천주교회의 특징이었는데, 칼뱅은 목사, 장로, 교사, 집사라는 네가지 직제를 도입하며 교역자와 평신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종교개혁은 '종교개혁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만큼 다양한 종파 및 교단의 출현으로 이어졌는데, 다양한 교회정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주교-사제-부제'의 틀과 유사한 감독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루터교, 성공회, 감리교 등이고, '총회-노회-당회' 등의 다단계 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장로교입니다. 각 교회가 독립적이면서 같은 교단의 교회들끼리 구속력 없는 친교회 정도만 두고 있는 것이 회중제로 회중교회, 침례교회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감리교나 침례교회는 상당 부분 장로교의 영향을 받아 장로교化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물론 사회개혁까지 추구하는 급진적인 종교혁명을 추구하는 흐름도 있었는데, 폭력성을 띠고 농민반란을 주도했던 흐름이 실패하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회속의 제자도 집단을 구성하려는 공동체 운동이 있었고, 이들은 성인세례를 강조하면서 '재세례파'라고 불리며, 메노나이트파, 침례교 등이 있습니다. 아미시공동체도 이 그룹에 속하며, 오늘날 평화운동에 힘써 평화연구소를 세우고 '평화교회'라고 불리는 그룹도 있습니다.

'칭의'의 교리만으로 부족한 면을 '성화'의 개념이 들어오게 되는데, 교황과의 갈등으로 국왕이 교회의 머리가 되어 먼저 교회체제를 만들고 나중에 교회정치와 신학을 만들어 간 성공회는 상당히 실용주의적인 중도론을 내세우는데, 이 성공회에서 '성화'의 개념을 강조한 감리교가 나왔고, 더 나아가 성결을 강조하는 성결교단이 나왔으며, 성결, 성화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을 강조하며 오순절교단이 출현했습니다. 모집단이 새로운 집단의 특별한 열심을 수용하지 못하면 따로 나와 새로운 종파와 교단이 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가 세월이 흐르면서 교리중심의 개신교스콜라주의로 경직화 될 때, 다양한 개혁운동이 새롭게 나타났고, 대각성운동이 일어나 복음주의교회의 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초에는 모든 교파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기도 했지요.

사도신경까지 부인하며 신약만을 인정하는 환원파(신약교회)와 같은 특이한 교회들도 나타나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 주요종파는 동방정교,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주류-루터교,장로교,감리교,성공회 등), 오순절교회, 복음주의교회의 6대종파를 꼽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대륙은 아프리카로 아프리카에선 오순절교회가 크게 교세를 넓히고 있으며, 기독교인구비율이 가장 낮은 대륙은 아시아입니다.

천주교는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만나게 되었고, 자체적인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었으며, 그 결과로 트렌트공의회를 통해 신학적, 교회법적 정체성을 재확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선교에 힘쓰면서 남미와 아시아 선교에 힘써 남미는 오늘날 가톨릭대륙이라고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시아에선 일본의 천주교박해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20세기초 서구개신교의 선교운동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개신교선교사들이 본국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운데 선교현장에서 연합과 협력을 도모하는 가운데 역량이 축적되어 선교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선교지 교회들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이어지고 본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에큐메니칼운동은 요한복음 17:21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될 것입니다."<공동번역>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선교의 방법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 초기의 사도공의회도 이러한 일치운동의 맥락에서 이해해본다면, 에큐메니칼 운동은 늘 기독교 역사를 관통해 온 것으로, 때로는 약화되거나 잊혀지기도 했지만 늘 지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19세기 이후 다양한 종파와 교단이 등장한 개신교에서부터 다시 움직임이 싹트고, 정교회와 천주교가 함께하게 되면서 기독교의 모든 종파를 아우르는 거대운동으로 확대되어 왔습니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에큐메니칼운동의 결정체로 1910년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고, 여기서 '계속위원회'가 결성되고, '국제선교협의회'로 발전하였으며, '국제선교협의회'는 선교본국과 선교지에 국가별 '기독교협의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신학과 조직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과 직제'운동과 사회적 실천과 봉사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생활과 사역'운동이 펼쳐졌으며, 서구교회 중심의 이 두 운동은 2차대전 이후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로 탄생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1차대전 후 국제연맹을 모델로 교회연맹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했던 동방정교가 세계교회협의회 결성 초기부터 참여하였고, 천주교도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일부 기구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타종파 및 교단을 이단이 아닌 형제자매교회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천주교는 주교 중심의 교회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는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평신도사도직'을 강조하게 되었고, 루터교와의 대화를 진전시키면서 '칭의론'을 기독교신앙의 핵심으로 인정하고 교리서에 공식적으로 포함시켰습니다. 정교회의 이콘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천주교가 오늘날 오히려 이콘을 대중화하기도 했지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 가운데 에큐메니칼 대화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한국은 식민지하에서 또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에큐메니칼 연대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큐메니칼'이란 단어가 본래 '인간이 사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에큐메니칼운동은 에큐메니칼 대화를 넘어서서 인간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합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수강생들의 열띤 관심을 보여주는 질문과 대답이 있었습니다. 일치를 해치는 연합도 있을 수 있음을 걱정하는 소리도 있었고, 일치운동의 다변화는 물론 저변 확대와 지역에큐메니칼운동의 필요성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일치운동은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안목사님은 당신의 몽골선교사역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몽골에서 연합신학교(개신교간 연합)를 세우고 목사안수를 연합으로 하게 되었고, 공동으로 몽골어 성경번역을 해내어 천주교회에서도 그 번역성경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전하며, 안목사님은 '실제 하나가 된 교회'를 꿈꾼다고 하였습니다. 

장신대 신학생들과 천주교내 일치운동 그룹의 대화가 장신대교수들에 의해 중단된 데 대한 지적에 안목사님은 몽골에 가 있던 기간에 있었던 일이라 잘 모르지만 청년들에게 에큐메니칼운동을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고 답하면서, 강의안에 있는 [에큐메니칼참여]라는 제목에 있던 내용을 한번 더 강조해주셨습니다. 

"서구, 남성, 중년, 교역자 위주의 운동에서 비서구, 여성, 청년, 평신도의 참여를 통한 균형잡힌 운동으로 나가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와같은 맥락에서 장애인의 참여도 중요한 부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치아카데미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열리게 된 것으로, 강의가 진행될수록 수강생들의 열띤 참여가 느껴지게 되겠지요.^^ 

 

(2015.2.6 저녁)

(2015.2.7 밤)

(2015.2.12 저녁)


일치아카데미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사회적으로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세월호관련 집회와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투쟁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쌍차굴뚝농성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오체투지행진이 몇차례 있었고, 2월 5일의 오체투지행진은 경찰의 무리한 탄압으로 방송차 견인 시도와 참가자 연행이 있었습니다. 2월 6일에는 희망연대노조를 중심으로 오체투지행진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이를 내란 운운하며 경찰이 막아서자, 광주의 LGU+비정규직 노동자 한 사람과 인천의 SK비정규직 노동자 한 사람이 중앙우체국 앞 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달려가보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뿐. 다음날 촛불교회와 향린교회가 연합기도회로 지지 연대하는 모임이 있어서 함께했고요, 교회를 오가는 길에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만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이날도 일치아카데미 강의를 들으러 명동성당으로 향하다가 신세계백화점 앞 사거리에 버스가 정차해 있는데 전광판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으로 담아두는 것 외에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강의가 끝난 뒤 돌아오는 길에 "'에큐메니칼'이란 단어가 본래 '인간이 사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우체국 앞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은 이제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그 추운 바람을 침낭과 스티로폼 깔개와 비닐덮개로 견디는 모습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설 연휴에도 저러고들 있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모금함이 눈에 띄어 지갑속에서 만원 한장을 꺼내 넣는데, 잘 준비를 하고 있던 노동자들 가운데 몇 분이 다가와 고맙다며 서명을 부탁하더군요. 추워서 잉크도 잘 나오지 않는 펜으로 서명을 하고 돌아서는데,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그분들의 인사에 진한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주여, 저들의 눈물을 기억하소서!

왜 세상은 기업의 도산에 대해서는 그토록 염려해주면서, 노동자들에겐 냉혹하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강요하는 걸까요?

아직 닥치지도 않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대비하여 흑자속에도 강행되는 정리해고! 이것을 정당하다고 말하는 세상! 해고되면 먹고 살 길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그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그렇게 짓밟으려고만 하는 세상!

그 비정한 세상속에 예수님-오후 다섯시에 온 품꾼들에게까지 하루 일당을 준 포도원농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출처 : 평화를 만드는 교회
글쓴이 : DoDuck강형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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