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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119「듣는 자, 행하는 자」

DoDuck 2014. 11. 19. 11:37

[날마다 묵상]141119「듣는 자, 행하는 자


(롬2:13)[개정개역]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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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이기에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명제를 제시했지요.

묵상글을 올린 후 나는 여전히 '기독교적 성악설'에 근거한 선교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적 성악설'의 뿌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있고, 그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셨는데,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 구원하신다."는 생각을 퍼뜨린 자가 바울입니다.

<원죄, 의인화 …> 이런 개념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었나요?

나는 예수님만 집중해서 바라보려 했는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바울의 예수 해석'에 갇힌 예수님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오늘날 기독교라는 종교의 신학적 기틀을 제공한 분이 바울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난 "예수님만 바라보느라 바울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구나" 반성하면서 로마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어가다가 제2장에서 눈에 들어온 말씀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토록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대는 사람들이, '4영리'를 가지고 전도하느라 애가 닳는 사람들이, 왜 이 말씀에는 주목하지 못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말씀도 있더군요.(롬2:23~25, 공동번역)

율법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왜 율법을 범하여 하느님을 욕되게 합니까? 

성서의 말씀대로 "당신들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할례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할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받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율법이 명하는 것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도 할례받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보아 주실 것이 아닙니까? 

실제로 할례를 받지 않고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오히려 할례를 받고 기록된 율법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율법을 어기는 사람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인의 겉모양만 갖추었다 해서 참 유다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녔다고 해서 참 할례를 받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이 말씀 중 '할례'라는 단어를 '세례', 또는 사영리 전도를 받아 하게 된 '영접의 고백과 기도'로 바꿔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고백하며, 그 죄인 사울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설명하면서도, 구원받아 바울이 된 자신이 완전히 의인으로 변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1:15-16, 개정개역)

바울은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려고' 노력했고, 스스로 "나를 본받으라" 말할 만큼 자신있게 되었으면서도, 오직 푯대를 향해 달음질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셨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하는 말을 듣고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롬3:31, 표준새번역)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차이는 '율법을 듣는 자'와 '율법을 실천하는 자'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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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향린교회 김경호목사님이 가르쳐주시는 성서학당 강의가 이제 [제4부. 바울과 기타서신]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나의 부족했던 바울에 대한 이해를 이 기회에 충분하게 채워주시기를 기대하며 수업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리 수강신청하지 않은 분들도 와서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성서학당을 주관하는 뉴스앤조이가 방법을 바꾼답니다.

함께 듣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다보면 각자의 들은 바를 실천하는 걸음도 외롭지 않은 걸음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