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또는 일기, 편지/오늘의 묵상

[날마다 묵상]141118「하나님의 형상(1)」

DoDuck 2014. 11. 18. 12:23

[날마다 묵상]141118「하나님의 형상(1)


(창1:27a)[표준새번역]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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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영감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난 이 말씀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유전'으로 사람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라고 말하는데(그래서 이를 기독교적인 성악설이라고 하지요), 난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을 닮았기에 선하다고 말합니다.

다만 인간은 완전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지요.

하나님의 경지에 이르를 수 있는 싹(또는 씨앗)을 품고 태어나, 그 싹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말씀은 우리가 젖먹이나 어린아이같은 상태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권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기독교적 성악설에 기초하여 우리가 죄인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선과 악, 죄와 용서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해보았는가 따져 묻고 싶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단순히 녹음기처럼 되풀이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따져 물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누구가가 "너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야!"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선뜻 "맞아! 내가 죄인이지!" 고백이 나옵니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것도 억울한데, 수백 수천 수만 대를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조상이 저지른 한 가지 실수 때문에 도매금으로 죄인 취급 받아야 합니까?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는데, 당연히 우리의 조상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깨닫게 된 상태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죄인 취급을 받으려면 우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 죄라고들 하는데, 갓난 아기처럼 전적으로 부모와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는 상태를 죄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해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가장 어린 아기, 그처럼 자기중심적인 존재도 없을텐데, 하나님의 모습 속에도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내가 하나님의 형상인가 반성해봅시다.

우리 이웃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해 냅시다.

왜 예수님은 "주리거나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었거나 헐벗었거나 병들었거나 감옥에 갇힌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까?

"주리거나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었거나 헐벗었거나 병들었거나 감옥에 갇힌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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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라는 단체의 등록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살기 수도권 세미나 11월 모임'에서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강의를 들었지요. 

[지금 여기 정의로운 생명 평화 ― 참으로 인간이고자]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거창의 연구공간 <파랗게날>이 진행하는 스물여덟 번째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로서 [지금 여기 정의로운 생명 평화] 네 마당 중 넷째 마당이었다고 하더군요.

목사님의 강의가 제게는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너, 잘 가고 있어!"라는 하나님의 격려로 들렸다니까요.

오늘 묵상은 김기석목사님의 강의를 제 방식으로 우려낸 것입니다.

미리 제목에 (1)이라는 숫자를 붙인 것은 앞으로도 몇 번 더 우려먹겠다는 뜻인 거 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