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묵상]140923「노엽게 하지 마라」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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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주 이 말씀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려고 애썼지만, ‘노엽게 하지 말고’에서 실패했지요.
난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는 말씀을 항상 가슴속에 담고 있었습니다.
교직을 스스로 떠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지요.
체벌금지가 사회적인 합의가 되어버린 순간 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체벌금지가 사회적인 합의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협박으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뒤늦은 깨달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런 깨달음이 생겼고, 이제 체벌이 없이도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미련 없이 교직을 떠났습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4~26)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하기.
노엽게 하지 않기.
거듭 훈련해야 할 나의 약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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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독교인들이 제발 이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협박으로 사람이 바뀌랴!
‘사랑을 말하면서 협박으로 사람을 바꾸려하는’ 모순도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란 외침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광화문 광장에 있다 보면 세월호특별법 서명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시비를 걸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비를 걸어오는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대리운전기사 폭행 사건과 같은 일을 유도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광화문 농성장의 스탭들은 그들을 조용히 타일러 돌려보냅니다.
정 어쩔 수 없는 경우, 배치되어 있는 경찰들이 그들을 돌려보낼 수 있도록 부탁하지요.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하는 법을 광화문 광장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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