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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0925「편을 가르고 있나요?」

DoDuck 2014. 9. 25. 06:49

[날마다 묵상]140925「편을 가르고 있나요?」


(마 2:16~18)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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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노란리본뱃지를 달고 다니다보니 가끔 "여기서는 떼어버려라"든지 "아직도 달고 다니냐, 왜 달고 다니냐"는 얘기를 듣습니다.

엊그제도 지방에 내려가 모임을 하다가 지방경찰청장으로 일하다가 은퇴했다는 분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셔도 요즘은 3일장인데, 지금 몇 달째냐?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이런 모임에선 떼고 있는 게예의 아니냐?"

그래서 시작된 대화를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이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아이가 태어난다는 소식에 그 아이를 제거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참사는 그렇게 시작된 거죠.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이 얼마나 넓은 지역인지, 죽임을 당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었는지, 기록으로 알 순 없으나, 최소한 몇 십명에서 몇 백명은 되지 않았을까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에는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간 자식들 때문에 울고 있는 라헬들의 통곡에 대해 말하고, 그 어미들이 위로조차 거절하며 울고 있다고 탄식하는 말씀이 있습니다.(렘 31:15)

그런데 거기에 이어지는 말씀(렘 31:16~17)에선 그 자식들이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말씀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로 주어지지요.

오늘의 말씀, 이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의 죽임당한 아이들의 어미들에겐 하나님께서 어떤 말로 위로를 하실까요?


자녀를 잃어 본 경험을 가진 저는 죽임당한 아이들의 어미 심정이 어땠을까,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어떤 뜻인지 잘 압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위로를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테니 차라리 위로의 몸짓을 그만두겠습니까?

"내 자식 죽은 것도 아니고 남의 자식 죽은 일에 그리 오래 슬퍼할 게 뭐 있담,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식은 가슴에 묻고 평생을 눈물속에 지낼 사람들인데 평생 따라 다니며 위로해 주어야 하나?" 묻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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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페북에서 만난 글입니다.

엊그제 있었던 그분과의 대화도 자식을 잃었던 제 경험까지 고백하고 나서야, "아, 너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공감의 표정을 볼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분은 끝까지 "나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너와 같이 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생각해보니 저들은 끊임없이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면서 이러한 국민적 참사마저도 편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책임을 모면하는 방법에는 국민들을 분열시켜 편싸움을 시키거나, 적당한 희생양을 찾아 모든 책임을 그에게 얹어 내모는 방법들이 있지요.

저들은 어떻게 위로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수백, 수천, 수만의 한맺힌 사람들을 만들어내고도 그 한을 풀어주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책임을 면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요.

유가족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좌파니 종북이니 딱지를 붙이면서 반대편을 길러 편싸움을 시키고 있습니다.

난 저들이 강요하는 이런 편싸움의 틀을 벗어던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