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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0927「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DoDuck 2014. 9. 27. 09:14

[날마다 묵상]140927「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마 16:21~23)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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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 16:13~20의 말씀은 시몬 바요나라는 이름을 베드로로 바꿔주시며 그 반석위에 교회를 짓겠다고 하셨던 분이 23절에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을 상상합니다.

과연 주님의 목소리는 속삭이는 목소리였을까, 천둥치듯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차라리 지옥에나 가라!"라는 욕설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는 말씀은 같은 뜻이 아닌가?

나는 자주 묵상하던 [싸움]의 장면을 여기에서 떠올립니다.

예수님은 <마 10:34>과 <눅12:51>에서 말씀하신 칼과 불, 곧 '피해선 안 되는 싸움'의 전형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계신 것이 아닌가?

장차 교회를 세우고자 결심할 정도로 믿고 아끼던 제자이지만 단호하게 내치며 싸움을 거시는 모습 아닙니까?

그런 얘기하려면 차라리 지옥에나 가버려!

그런 사고방식을 아직도 갖고 있다니, 그런 생각이라면 차라리 지옥에나 가버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과는 싸워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의 일을 내세워 우리의 발목을 잡는 사람들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사람의 일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길래 집안 식구를 원수로 만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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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요즘 묵상글을 읽고 걱정하며 해주는 말이 "너같은 이가 있어서. 조금은 바뀌어 갈 순 있겠지만. 너의 힘든 마음은 어디가서 치료받을 수 있겠나? 그저 물따라 바람따라. 그리 살아보시게"였습니다. 

한 번은 이런 충고도 하더군요. "우리나라 역대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사건들이  무수히 많은 걸로 알고 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반복되는 일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세상은 어쩔 수없이 그렇게 돌아가는구나'라고 편하게 생각함 안될까?"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 가운데 [이겨서 손해 보는 싸움 5가지]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1. 아내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 본다. 아내가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기 때문에

2. 자식(子息)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 본다. 자식을 이기면 자식이 곁길로 가던지, 기가 죽는다

3. 언론(言論)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본다. 활자(活字)엔 마력이 있기 때문에

4, 국가 권력하고 싸워서 이기면 손해 본다. 권력은 백성이 위임해 준 것이기 때문에

5. 하늘(의 뜻)하고 싸우면 손해 본다. 孟子 글에도, 順天者는 興하고, 逆天者는 亡하느니 라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꼭 이겨야되는 싸움 5가지]라는 제목으로 "1. 질병, 2. 가난, 3. 무지, 4. 시련, 5. 자기"를 소개한 뒤에 행복 9계명을 덧붙이고 있는 글입니다.

이글은 손해보는 싸움을 피하라는 암시를 담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대립하여 가난은 꼭 이겨야할 대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몇가지 속에 글쓴이가 주고자 하는 가르침(자신의 정치적 태도, 인생관, 가치관)을 슬며시끼워넣어 사람들을 엉뚱한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것을 막으려는 입장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습니까?

때로는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을 막고 싶어하는 이들이 '하늘의 뜻을 전한다'는 핑계로 이 글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나는 나의 손해를 걱정해 주는 사람, 좁고 험한 길을 왜 걷냐고 이제 그만 편한 길로 가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고함을 지르고 싶어집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내 양을 먹이라'는 부탁을 받은 분이었지요.

마찬가지로 나를 걱정해주는 그분들이 나의 고함소리에 놀라 관계가 깨어지는 데까지 나아가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요.

하나님은 가장 작은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통속에 부르짖는 신음소리를 유창한 기도보다 더 세심하게 듣고 계시며, 그들을 건져주시기 위해 일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세월호 가족들의 신음소리에 귀기울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