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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일기(2014.08.12)

DoDuck 2014. 8. 17. 04:07

매주 화요일은 동부병원에 호스피스 봉사를 하러 가는 날입니다.

이번 주(8월 12일)에는 팀원들이 그 날의 활동 조편성을 하는 중에 "산책을 원하는 이가 있는데 기운이 없으시니 그걸 해주지 않겠냐"고 해서 만 63세의 말기 간암환자를 산책시키게 되었습니다.

 


산책이라고 해봐야 휠체어로 병원 내부를 왔다갔다 하는 정도인데, 날이 뜨거워서 갈만한 곳이 별로 없었지요.

외래환자들을 진료하는 1층 로비를 왔다갔다 하다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말을 걸었습니다.

한옥 고택의 툇마루를 잘 직은 사진이 있었는데, 저것이 일반 주택이었을지, 절간이었을지 모르겠다 했더니, 일반 주택이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혹시 선생님은 어릴 때 저런 집에서 살아보셨냐고 물어보니, 저린 집에서 살았으면 내가 요렇게 되었겠냐고 하더군요.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고 보니 살아온 이야기를 조금은 내보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건설노동자로 (당신 표현으로는 막노동으로) 살아왔고, 자녀가 셋이며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시집장가까지 다 보냈다고 하네요. 손주도 보았답니다. 집도 장만했다네요. 이제 병치레 하느라 힘들어 내놨더니 시세가 4~5억 간다고 합니다.

막노동으로 자녀를 셋씩이나 대학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집까지 장만하셨으면 정말 열심히 사셨고, 이제껏 인생의 목표는 거의 다 이루신 셈이네요, 하고 칭찬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제 막 자녀들 다 분가시키고 아내랑 알콩달콩 편하게 지내려는 순간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

당시의 몸 상태를 아시냐고 물었습니다. 간암인데 말기라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고 한달 남았다고 하더랍니다. 항암치료를 2차까지 받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한 상태하네요.

이런 때 무슨 말을 해주어야 위로가 될지, 새 힘을 줄 수 있을 지 막연하였습니다.

지혜가 생기기를 기도하며 휠체어를 말없이 밀었습니다.

3층 병실 밖에 작은 쉼터가 있고, 4층에 옥상 정원이 있는데, 3층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지난 겨울에 눈에 띄어 사진으로 찍어둔 모자상 조각 화분이 있더라구요. 그걸 보는 순간 얘기거리가 생각났습니다.

혹시 손주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물어보았지요.

몸이 이러니 귀찮기만 하다고 합디다.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돈을 넣고 있다가 손주들에게 군것질 하라고 용돈이라도 쥐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만나도 미안하기만 한 마음에 귀찮아하게 되었답니다.

난 내가 호스피스 봉사를 하게 된 동기를 고백하면서 내가 가졌던 평소의 생각들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명예퇴직 후 무얼하며 살까 고민하던 중에 봉사활동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첫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었던 때가 생각나더라. 아들을 잃고 오랫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하느님 원망도 많이 하고 늘 우울했는데, 어느날 문득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 몸이 죽고 난 다음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생각해보니 예수 시대 죽은 자를 살려냈다는 얘기가 있는데(나사로) 그 사람이 지금껏 살아 있단 얘긴 못 들었고, 결국 다시 살려낸 나사로도 다시 죽었을 것이다. 사람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겠냐. 육신의 질병밖에 못 고치는 기적은 믿을 게 못 된다.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삶의 지혜를 가르쳐야 하고, 내 영혼의 구원을 이루는 기적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생겼다. 사람이 나이 순서대로 죽는 게 아니고, 죽는 모양도 천차만별 갖가지 모양으로 죽는데, 난 나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을 때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헌혈증서를 모아주고 병원비하라고 성금을 모아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도 사람들에게 빚을 갚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명퇴 후 봉사활동을 하기로 하면서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를 하려 했었는데 어쩌다 호스피스 봉사로 빠져들게 되었다.] 대강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 분은 봉사활동이란 말에 잠깐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실비 정도의 보수는 받고 하는 일 아니냐고 묻더군요. 전적으로 무보수봉사활동이고, 호스피스 봉사를 위한 전문 교육도 수강료 내고 배우고 와서 하는 일이라고 했더니 몇 번을 정말이냐고 확인하였습니다. 뭘로 먹고 사느냐고 걱정하길래 아내가 벌고, 나도 연금으로 월 180정도 나온다고 하니까 그제야 안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겨우 장만한 집을 병원비를 위해 팔려고 내놓은 당신의 상황을 말하며 한숨을 쉬네요.

지금의 형편을 너무 절망스럽게만 받아들이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껏 열심히 살면서 자녀들 교육시키고 분가시키고 집까지 장만하고 후회없이 보람된 삶을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이제는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하고 그 지혜를 갖는 데 시간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손주들에게 주머니에서 용돈 꺼내 주는 것보다, 이제 더 귀한 것을 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길게 말씀하지 않으시더라도, 엄마 아빠 말씀 잘들어라 말하면서 꼭 보듬어 안아주는 것도 귀한 선물 아니겠냐고 말씀 드렸습니다.

남은 수명이 한 달이라는 얘기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라, 병은 마음으로도 조절될 수 있는 것이니 통증조절 잘 하면서 깊이 수양해 나가시면 새로운 삶의 지혜를 깨닫고 자녀들에게 손주들에게 전해주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배워야 할 것을 다 배우고 나서야 저 세상으로 데려가신다고 하더라(퀴블로 로싸의 말입니다), 등등의 얘기를 하였더니, 그 사이에 피곤해지셨는지 병실로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쓸데 없이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주제넘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가, 환자의 의식이 이런 이야기를 소화해 낼 만한 형편이 아닌데 피곤하게 해 드린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실로 돌아와 눕혀드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봉사자 분들이 발마사지 서비스를 하려고 준비하는데, 그 분이 느닷없이 "매일 와서 산책시켜줄 수 없느냐"고 묻습니다.

순간 갑자기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환자로부터 인정받은 위로자가 되었다는 기쁨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오기로 정해져 있는데, 말씀을 그리하시니 목요일에 한 번 더 올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약속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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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4 목요일에 한 번 더 시간을 내어 갔는데, 그날따라 봉사자 숫자가 적어서 그 분 산책에만 시간을 쏟을 수 없었습니다.

발마사지 해 드릴 분들을 웬만큼 해 드리고 난 뒤에, 그분을 휠체어로 모시고 나갔는데, 그분의 상태나 내 상태나 지쳐서 깊이 있는 인생 얘기를 나누기가 어려운 상태였지요. 가벼운 이야기만 조금 나누다가 돌아와서 발마사지로 마무리하고 목요일 봉사활동을 마쳤습니다. 발마사지를 하려면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데, 마지막 발마사지를 하는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오더군요.

자원봉사자들을 팀에 연결시켜주는 목사님께서 다른 날에는 그 분 산책만 하고 가라고 했는데,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