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버 교실/05 진정한 용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나를 돌로 쳐라!” (용서는 누구에게? ⑤)

DoDuck 2008. 1. 11. 00:13
  “너는 잘못한 적 없어? 네가 내게 뭐라 그럴 자격 있냐고?” 이렇게 대드는 친구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긴 하지만 분노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다 실패한 데 대한 분노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상대방이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고 지나치게 과도한 짐을 자신에게 지게 한 데 대한 분노이다.
  만일 상대방이 용서해주지 않고 지나치게 과도한 짐을 그에게 지게 한 데 대한 분노라면, 이런 상황에서 반성해야 할 사람은 잘못한 사람보다도 죄인이라는 이유로 학대하고 있는 다른 이들이라고 할 것이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 할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던 예수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죄인이라고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이런 여인도 용서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때때로 “네가 내게 뭐라 그럴 자격 있냐?”는 질문은 예수의 가르침을 잘못 가져다가 “누가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누가 정죄할 자격이 있는가? 누가 용서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시비를 거는 데 활용하는 셈이 된다. “네가 내게 뭐라 그럴 자격 있냐?”는 말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나,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라”던 예수의 가르침을 잘못 끌어다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그가 내뱉는 말을 그대로 그 자신에게 적용하여 지적해 줄 수 있다. 지금 자기 눈 속에 들보가 들어 있는 주제에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찾아보려는 태도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데 실패하고서 아직 잘못이 드러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잘못을 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드러날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잘못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상대방의 문제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묻은 똥을 일부러 묻혀주면서 “너도 묻은 똥 아니냐, 나만 가지고 그러지 말라”며 “물귀신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속담들은 누가 인용하여 말하는 것이 정당한가? 어떤 조건 속에서 타당한 말인가? 모든 속담과 격언은 일정한 조건 속에서만 타당하다. 예를 들면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격언이 있는가 하면,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는 얘기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나를 돌로 치라”는 얘기는 화자(話者)가 다르다. 돌로 칠 수도 있는 잘못을 한 사람의 태도 마저도 다르다.
  “너는 잘못한 적 없어? 네가 내게 뭐라 그럴 자격 있냐고?” 이렇게 대드는 친구들은 “용서는 누가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깨달아야 한다.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서 진정한 용서는 어떻게 해 주는 것이며, 죄의 대가는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죄의 대가로 주어지는 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먼저 자신의 죄와 부끄러움을 안다면 비뚤어진 자격지심으로 반발하기보다 겸손히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