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버 교실/03 희생과 양보의 원리

수혜자의 도리 ③ (감사 : 누군가의 사랑에 민감하기)

DoDuck 2007. 11. 25. 21:42

   희생자는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에 대응하는 수혜자의 자세는 감사라고 할 수 있다. 감사의 마음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 대로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도리로서 다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나는 단지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한 부분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사례에 대해 조금만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사랑에 대하여 둔감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 특히  <다른 이들의 양보와 희생을 '그들이 해야 할 의무'라고 이해하는 사고방식>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생님은 제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게 마땅하다. 의무를 이행하는데, 자연의 법칙에 따른 행동인데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사고방식은 부모의 사랑을 스승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지 못한다.

  아마 이런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모습은 거래관계에서 잘 볼 수 있을 것같다. 돈을 주고 무엇인가를 사면서 사람들은 그 파는 사람에게 군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쉽다. 손님은 왕이라는 표현이 생긴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돈을 지불했으니 너는 나에게 이런저런 써비스를 할 의무가 있다. 그건 너의 의무이니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은 아니다.” 과연 그런가?

  어쩌면 종족보존의 본능이나 평화를 사랑하는 본성으로부터 시작된 지혜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보다는 사랑과 희생을 하도록 이끌어 왔는지도 모르지만, 개체의 생존본능과 종족보존본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선하는 것인가? 그것은 함부로 장담하기 어렵다. 지구상에 희생적인 사랑의 표본처럼 얘기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더라도 자기자식을 버리는 모진 엄마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사실 생각해보면, 사랑이나 희생을 ‘의무나 자연의 법칙에 따른 운명적인 행위’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희생양을 결정하는 원리를 설명하면서 ‘의미 있는 차이’를 찾아 결정하자고 나름대로 원칙을 설명했지만, 그것을 어떤 법칙으로 이해하고 의무와 권리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채고 그 필요를 채워주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비록 거래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의 필요를 앞서 판단하고 그 필요를 채워줄 준비를 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상대방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게 되었든지 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그 행위에서 사랑을 읽어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이유로 그것이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심지어 거래에 불과한 일일지라도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의 대부분이 빈부격차의 문제나 물질적 욕망의 추구라는 문제로 자본주의 사회를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만,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적인 우수성을 바로 이점에서 찾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는 길, 그것은 낯선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그걸 채워 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원리를 영리추구와 자유경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적 우수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남의 필요를 발견하고 배려하여 성공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기보다는 시기와 질투만 가득차서 "칭찬이나 대가를 바라고 하는 '선행'은 진정한 선행이 아닌 위선"이라는 엉뚱한 논리로 그들을 비난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감사할 줄 모르고 다른 이의 사랑에 둔감한 사회라고 한다면 반성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의 상품생산 - 누군가 낯선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 바로 그 사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르치자. 감사하는 소비자가 되도록 가르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