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버 교실/03 희생과 양보의 원리

수혜자의 도리 ① (머리말)

DoDuck 2007. 11. 25. 21:07
 

  은혜를 갚은 개미 이야기, 은혜를 갚은 까치 이야기,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개 이야기 등을 통해 금수는 물론 벌레까지도 은혜를 안다고 해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그 인격을 ‘개만도 못한 놈’으로 평가한다. 당연히 수혜자의 도리는 첫째가 감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수혜자는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희생자의 태도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수혜자의 도리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하고 알기 쉬운 이야기를 나는 또 왜 깊이 생각해보고자 하는가?


  우선 인간이라면, 평범한 사람(凡人)의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적어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은 “과연 ‘은혜를 입었다’는 자각이 있는가?”의 문제와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문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기에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보다 그 사랑에 둔감하기 쉽기 때문에 수혜자들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랑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당연히 받을 것을 받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사랑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은 감사의 도리를 모르는 식충(食蟲)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또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표정으로, 언어로, 행동으로, 물질로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오해되고 있는 형편이다. 사례(謝禮)와 뇌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례(謝禮)와 대가를 혼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다음에 또 생각해 볼 일은 희생이 미련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수혜자들은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점에서 나는 다수결에 따라 희생양을 정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희생자의 태도에 짝을 이루는 것은 감사인데, 나는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희생자의 도리를 살펴본 마지막 장에서 희생자가 짊어져야 할 사랑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나는 수혜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다음에 또 부딪칠 ‘누군가 양보(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대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찬미다. 찬미란 높은 인격을 가진 분들을 향한 보통 사람들의 칭찬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순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기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기림의 중요성을 비롯하여 위에 말한 몇 가지 문제들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