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버 교실/03 희생과 양보의 원리

수혜자의 도리 ⑤ (감사를 넘어서서 : 찬미와 기념)

DoDuck 2007. 11. 28. 11:09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 짐승들도- 나아가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개미조차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표현한다면 기껏해야 받은 바 은혜의 1/10 정도밖에 안 되는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감사의 표현만으로 부족함을 느낀다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감사의 표현을 넘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우리가 감사의 표현을 넘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희생자를 기념하고 찬미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은혜에 대한 감격이 지나쳐서 감사만으로도 도리를 충분히 하는 것인데 공연히 덤으로 해주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감사와 찬미는 수혜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소홀히 하면 그 사회는 병들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양보와 희생을 하는 이들에 대해서 찬미하는 일은 단순히 그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넘어서서 그 사회의 도덕적인 건강성을 지켜나가는데 필수적인 조건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중고등학교 도덕교과서는 한결같이 오늘날의 우리사회가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 원인을 황금만능주의의 팽배, 산업화, 도시화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도덕적인 문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의 실패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주로 우리 남한에서의 일이었는데, 해방 이후 숙청의 위기에 놓여 있던 친일파들은 일제하의 행정체계를 일단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미군정하에서 숨통을 발견하였고, 친일파들은 결국 정권욕에 사로잡힌 이승만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남한에서는 친일파들이 애국지사로 둔갑하며 오히려 일제하에서보다 더 출세하게 된 반면, 독립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고, 좌익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아예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며 매국노보다도 더 심한 핍박을 받아야했다.

  이 시기에 유행했던 표현 중에 ‘사바사바’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을 풀이하면 ‘뒷거래를 통하여 떳떳하지 못하게 은밀히 일을 조작하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서, 이 시기에 우리 사회의 도덕적 상태는 최악의 수준이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희생자를 기리는 일은 다시 또 똑같은 상황에 빠졌을 때 누군가 희생과 양보의 길을 결심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고독하게 희생을 결심해야 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비록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것이 희생이지만, 우리는 희생자들의 사랑을 알아주어야 하고, 희생자들에게 감사해야 하며, 나아가 그들을 기념하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찬미해야 한다.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누군가 희생과 양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희생을 결심하기를 주저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을 격려하고 고무해야 하는 것이다.

  희생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사랑을 상대방이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였던 바,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가르치는 교사’라는 중요한 역할이 희생자들에게 주어진 몫이라면, 그 가르침을 받는 수혜자들에게는 역시 그 진정한 사랑이 세상에 널리널리 퍼져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지도록 그 사랑을 널리 알려나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희생자가 우리들에게 전하는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희생자들이 그 희생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하며, 그 뜻을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희생자를 기린다는 것은 희생자의 뜻을 마음에 새기는 일 <기념(記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