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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130「기본소득」

DoDuck 2014. 11. 30. 15:57

[날마다 묵상]141130「기본소득


(레25:23)[표준새번역]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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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나그네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대대손손 나그네로 왔다가는 인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당신을 찬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하여 다른 사람들을 비참한 처지로 몰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땅을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 주신 후, 경작권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셨습니다.
어쩌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생존의 기반인 경작권을 팔게 되었더라도, 주기적으로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는 것을 하나님 백성들의 의무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이제는 한술 더 떠 이 땅의 소유를 '지금 우리'의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나그네에 불과한 우리가 우리의 뒤를 이어 올 후손들의 몫까지 미리 앞당겨 다 써버리고 있는 형편인 것이지요.
우리가 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엄중한 선언 앞에 제대로 서지 못하면, 우리는 미래를 잃어버린 종말의 시대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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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11.28)에는 토지정의운동 30주년 기념행사-기본소득 대담회, 「희년, 기본소득을 만나다」에서 녹색평론 김종철선생님과 숭실대기독교학과 김회권교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 너희는 다만 나그네일 뿐이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김회권교수님은 성경을 바탕으로 말씀을 짧게 전해주셨는데,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몇 가지 오해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는 마가복음 14:7 말씀.
[날마다 묵상]141010「항상 함께 있는 가난한 자」에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날 김회권 교수님은 뜻밖에도 이 말씀의 구약 본문인 신명기 15:11 말씀이 히브리어 성경이 70인역으로 번역될 때 오역된 말씀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신명기 15:11 말씀의 히브리어 본문은 "땅의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땅의 소출로부터 끊어져선 안된다"는 뜻인데, 70인역에서 잘못 번역되었고, 이 잘못 번역된 말씀이 마가복음에 그대로 옮겨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김교수님은 또 데살로니가후서 3:10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교회 사역자들에게 자비량 사역을 하도록 하라는 바울의 가르침일 뿐인 것을 모든 성도들에게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나는 김교수님의 말씀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잘 모르겠지요.
김교수님은 월간지 [복음과 상황]의 창간멤버이자 전 발행인으로, 복음으로 역사와 사회를 조명해 오신 분인데, 주변의 동료 신학자들에게서 "아직도 그런 일에 매달리냐"면서, "교수님의 노력으로 사회가 생명,평화,정의의 사회가 되어간다면, 예수님의 재림이 더욱 늦어지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듣는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얘기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하실 일들을 왜 네가 하려 애쓰느냐"는 얘기까지 듣는다고요.
이야기를 듣는 순간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어떤 잘못된 신학에 이미 깊이 뿌리박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레위기에서 면제년과 희년의 제도로 이어지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 실제 면제년과 희년이 제대로 시행된 적이 거의 없었지만, 예수님도 당신의사역을 희년의 선포로 시작하셨음을 생각하면, 희년의 정신은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 되어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오늘날, 희년의 정신이 어떤 방법으로 이 사회에 실현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의무일 것입니다.
「항상 함께 있는 가난한 자」에서도 말했지만, "가난한 자들은 으레 있기 마련이고, 몇 푼 적선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지"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 자체를 없애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끊임없이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 내겠지만, 우리는 주기적으로 희년의 실천을 통해서 다시 균등한 출발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희년의 실천은 무엇일까요?
난 그것이 '보편적 복지'의 확대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뿐만 아니라, 최소한 기본적인 생계와 자기발전을 위한 투자가 누구에게나 무조건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이미 진작부터 해왔던 분들이 있었네요!
반가운 마음과 함께 그분들의 깨달음을 전수받아야겠다는 의지가 솟았습니다.
우연히 누군가가 SNS로 소개해 준 광고를 보고 즉시 대담회에 참가신청을 했습니다.
그분들이 당신들의 연구와 고민의 결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었습니다.
이미 2009년 9월 MBC에서 [나미비아 오미타라 마을의 실험]을 통해서 '기본소득'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소개했었더군요.
김회권교수님은 가양교회에서 작은 실험을 시도해 볼 계획을 말씀하시고, 김종철선생님은 지역화폐를 활용하여 그 실험을 추진해 볼 것을 조언하셨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국가적으로 '기본소득'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국민투표에 부치려고 하는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시대가 빨리 오기를 기도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러한 시도들을 주목하면서, 관심가지고 공부할 주제와 방향을 발견한, 희망을 발견한 기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