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또는 일기, 편지/오늘의 묵상

[날마다 묵상]141201「새노래」

DoDuck 2014. 12. 1. 12:16


[날마다 묵상]141201「새노래


(시149:1)[개역개정]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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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전도서의 서두에 있는 말씀입니다.
정말 새로울 게 없는 무한 반복처럼 여겨져서 힘이 빠지는 시간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때에 새노래로 찬양하라는 말씀은 내게 고문과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새노래로 찬양을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슬픔과 고통속에서도 힘을 얻어 드리는 감사'를 기억하며, 힘을 얻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애써 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찾아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5:17) 말씀을 찾았습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가? 나는 새 것이 되었는가?> 내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훈계를 기억하며, '새 것'이 되었던 기쁨을 떠올립니다.
그날의 새로웠던 각오를 오늘도 여전히 붙들고 있는데, 이제와 '새 것'이 '익숙한 낡은 것'으로 느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학시절, 죽고 싶었던 시간, 지금은 목사가 된 누님이 내게 주었던 충고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죽고 싶었어? 그럼 지금은 죽고 내일 아침 다시 태어나!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태어나!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고, 다시 태어나!"
그날 누나의 목소리에 실린 깊은 사랑의 눈물은 다시 나의 길을 걷게 해 준 '새 힘'이었습니다.
'첫사랑'을 내가 의식하는 세계 안에서 찾을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태어나던 순간, 어머니 자궁안에서 잉태되던 순간,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던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태어나 성장하는 아기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그 자신이 새로운 존재이며, 이미 있었던 모든 것들이, 그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세계 모든 것'이 그 아기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울 게 없는 무한 반복처럼 여겨져서 힘이 빠지는 시간'은 우리가 성장을 멈춘 때입니다.
하나님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기나긴 역사를 생각해 보아도 청출어람의 사람들이 세상을 새롭게 해왔습니다.
우리가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청출어람을 기대한다면, 어떤 점에서 청출어람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나보다 더 뛰어난 무엇을 가지라고 기대해야 할까요?

"새 날과 새해는 달력의 바뀜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아침이 옴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웃을 형제로 보고 그들을 사랑으로 대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해아래 새 것이 없나니'라는 구절로 검색하여 어느 카페에서 읽은 현자의 얘기입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이 '이웃을 형제로 보고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일을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가장 오래된 가사로 된 새노래를 부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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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아래 새 것이 없나니'라는 구절로 검색된 찬양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