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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128「승리」(짧은 나의 자서전)

DoDuck 2014. 11. 28. 11:17

[날마다 묵상]141128「승리(짧은 나의 자서전)


(요일5:4)[개정개역]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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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를 돌아보면 생명과 정의, 평화의 세상을 꿈꾸면서도, 그 꿈을 짓밟는 세력의 폭압과 맞서는 것을 두려워했었던 것 같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가하는 집요한 박해가 늘 두려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은 가능하면 피해 왔던 삶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피해 다니며, 골고다 언덕 주변만 맴돌았던 셈입니다.

대학 시절 이른바 '이념써클' 활동을 하던 중에도, 친구들이 '노동운동'에 투신을 결심할 때, 난 "소시민운동이 더욱 절실하다"는 핑계로 다른 길을 찾아 떠났고, "타오르는 소시민이 되겠다"고 고별사를 남겼습니다.
그때 친구는 내게 "타다만 장작개비나 되지 마라"고 했었지요.

교단에 선 후, 독재정부의 나팔수가 된 교육현실을 고민하며, 새로운 교육운동에 목말라 하던 중에, YMCA상록회를 알게 되었고, 교사협의회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마침내 전국교사협의회가 결성되고 학교마다 교사협의회가 조직되어 갈 때쯤, 교직원노조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지요.
그때, 난 교직원노조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해직을 감수해야 하는 싸움인 게 분명했기에, 승리가 너무 멀리 있는 싸움이었기에,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이 두려웠었고, 4.19 후 등장했다 얼마 후 사라졌던 교원노조를 떠올렸을 겁니다.
난 "지금 성분 분류 작업하느냐? 이제 교사협의회가 막 출범한 시기에 내실을 다지며 뿌리를 공고하게 해야할 때에, 법을 어기는 투쟁으로 사람들을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게 말이 되냐?" 따지며 반대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교조'가 출범했고, 이후 수천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날 때, 아이러니하게, 근무하던 학교에선 나 혼자만 해직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후 장기적인 출근투쟁을 계획하며 '거리의 교실'을 시작했는데, 출근투쟁을 접는다는 방침이 정해지고, 해직 4년째에는 '탈퇴각서를 쓰고 신규채용되는 형식'으로 복직하기로 하면서, 난 전교조에 대한 미련을 버렸답니다.
'싸울 줄도 모르면서, 사람들을 싸움터로 끌고 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었지요.

이후에는 난 전교조설명회를 하다가 알게 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타오르는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애썼습니다.
'교과서 강해(講解)'가 아니라, 주제 중심의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의 심중에 새겨져야 할 질문을 만들어보려고 애썼습니다.
학생들은 신선한 수업을 통해 삶의 진리로 나아가는 즐거움을 맛보았지만, 갈수록 '깊이 생각하는 일'을 기피하게 만들어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나의 느리고 단조로운 목소리는 학생들을 물음표 앞으로 끌어오는 데 실패하게 하였습니다.
나의 무기는 체벌이었고, 나는 "가르치고 배운다는 일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다루는 <공부 잘하는 비결>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통해서, "알면서 왜 실천을 못해?"라는 질문을 다루는 <중독에서 벗어나기>라는 제목의 수업을 통해서, 체벌을 필요악으로 정당화 했었답니다.

그러나 사회는 점점 전면적인 '체벌금지'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완전한 사회적 합의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나는 더 이상 교단에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년이 아직도 10년 가까이 남은 시기에, '사표 쓰는 일'을 병가와 어머님 간병 휴직을 이유로 미루며, 고민하다가, 결국은 명예퇴직을 신청하여 교단에서 물러나왔지요.

교단에서 물러난 뒤에는, 어머니처럼 날 돌봐주던 누님의 권유로, 호스피스 봉사교육과 웰다잉지도자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일주일에 두 번 호스피스봉사를 하며 꿈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요즘, 직업을 기입하는 란에, 비록 무보수 봉사활동이지만, '호스피스'라고 적어 넣습니다.)
가끔은, "내가 가르치던 질문들을 아직도 이 사회는 필요로 하고 있는데…, 그 질문을 교과서는 던져주지 못하고 있는데…", 아쉬워하며, 난 친구가 경고했던 '타다 만 장작개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게 돌아봅니다.

교회에서 오래도록 소식지(주보) 편집팀장과 재정부장으로 봉사하며, 예수님 심어주신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성경을 통독하며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거금(?)을 투자하여 성서학당에 등록했지요.
교회개혁운동에 앞장 서 온 [뉴스앤조이]가 깔아준 멍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올해 4월 16일 충격적인 사건을 만났습니다.
수학여행 중이던 학생들을 바다에 그대로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
그건 사고가 아니라 기획된 학살극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살극을 꾸며낼 수 있는 나라, 그 잔인한 음모를 감추려는 온갖 시도가 통할 수 있는 나라에서,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는 질문과 맞닥뜨렸습니다.
그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우지 않고 어떻게 살겠다는 것이냐?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는 여러 존경할 만한 분들의 노력을, 그 결실을 이웃들에게 알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못해도, 고난당한 이들의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며 서 있기라도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말씀묵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강요당한 침묵을 깨뜨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아직도 흔들리는 가운데, 흔들리는 촛불이나마 들어보려고. 촛불교회 거리기도회마다 열심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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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촛불교회 후원의 밤' 행사가 명동 향린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촛불교회 6년을 돌아보며 목사님들이 말씀들을 나누던 중에, '이김'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말씀하시는 예수님.
이틀 후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실 예수님이 잠시 후 흩어져 도망갈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었지요.
[날마다 묵상]141014「이겼노라!」를 다시 읽으며, 목사님의 고백을 통해 '승리'의 의미를 나도 다시 한 번 새깁니다.
'번영신학'에 물든 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승리'.
십자가에 처형당하면서도 외칠 수 있는 '승리'.
그것은 내 생애에 열매를 보지 못해도, 끊임없이 부활하여 마침내 심판의 길에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믿음의 승리일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말하며 풀무불 속에 들어갔던 다니엘처럼, 이미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들, 그리고 무한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승리하셨던 장면들을 포착해내며, 인류의 진보를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아는 승리일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두려움에 대한 승리'이며, 종말에는 '하나님나라의 궁극적 실현이라는 승리'일 것입니다.
오, 하나님!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임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 안에 창조의 순간 심어두신 당신의 형상을 회복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