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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109「팔복물통 」

DoDuck 2014. 11. 9. 05:33

[날마다 묵상]141109「팔복물통 」


(마5:3-1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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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 성서학당에서 박득훈 목사님은 [하나님나라의 행복한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산상수훈의 팔복에 대해 강의를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오늘도 그 얘기를 계속 이어가려 합니다.


서론의 첫 번째 포인트는 어제 말한 '초신자용 학습주제'였다는 것이었지요.

두 번째 포인트는 “팔복이 각각 따로따로 주어지거나, 단계적으로 성장해나가며 받을 복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를 여덟 가지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여덟 번째 복에 따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을 두려워 피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직 첫 번째 복이 말하는 아직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 역도 성립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면 그는 기꺼이 의를 위하여 기꺼이 핍박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제1복과 제8복에 약속된 복의 내용이 같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박목사님은 이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팔복을 ‘8가지 됨됨이와 복’이라고 표현했는데, 여덟 조각으로 만들어진 물통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덟 가지 중에 이런 점에서는 그런대로 좋은 점수를 갖고 있는데 다른 점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됩니다. 여덟 가지 중에서 제일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의 평균점수라고 생각하면 안전합니다. 거기서부터 전체적으로 다시 성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그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그림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위 그림의 물통에 담을 수 있는 '하나님 주실 복'은 가장 낮은 '박해받음'의 높이 만큼일 것입니다.

확실하게 이해가 되지요?

이렇게 그려놓고 생각하니 가장 낮은 것보다 더 높은 다른 것들의 '더 높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다행인 것은 이 각각의 조각들의 높이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고정불변의 것이라면 가르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나는 사람의 됨됨이, 그러니까 인격의 평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박목사님의 표현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은 '사람의 인격을 바라보는 여덟 가지 관점'이며,

각각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가장 낮게 평가된 점수가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사실!


난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는 것은 잘 해 왔는데,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것은 가능한 피하고 싶었습니다. 자주 도망 다녔지요. 눈물은 많았으나 마음이 깨끗하지는 않았습니다. 난 나의 눈물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으로 하나님 주실 복을 기대해 왔는데, 왜 그렇게 흡족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심령의 가난함에 대해서는 늘 ‘어렵도다! 이 말씀은!’ 이렇게만 반응했는데, 바울의 고백을 그 적절한 예로 든 설명으로 ‘아하!’ 바보 도트는 소리를 조용히 냈습니다. 돌이켜보니 이런 가난함이 내게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도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더욱 깨끗한 마음을 갖기 위하여,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하여, 화평케 하는 자가 짊어지게 될 십자가 앞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하여, 더욱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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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깨달음을 주신 박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강의 내용을 교회 주보에 연재해도 좋은지 여쭤보았습니다. 도리어 고마워하시면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새맘교회 박득훈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