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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105「길」

DoDuck 2014. 11. 5. 08:27

[날마다 묵상]141105「길」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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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해주셨는데, 왜 우리는 또 우리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누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나요?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서 도망치는 베드로에게 나타나 "너 대신 십자가를 지기 위해 로마로 간다"고 하시며 또 다시 십자가를 진다고 하시는 걸까요?


성서학당에서 '四영리'를 가지고 전도에 열을 올리는 분들이나 구원파가 충격받을 만한 질문을 만났습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하나님은 꼼짝없이 나를 구원하셔야만 하고, 내가 아무리 착해도 확신이 없어서 하나님도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면, 도대체 하나님은 내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인가요?"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지신 것을 믿으면 구원에 이른다거나, 그 분을 영접한다고 고백만 하면 된다는데, 이는 마치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같은 게 아닙니까?"


엊그제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이 떠오릅니다.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걷고 난 뒤에 생깁니다. 주님이 길이 되신다는 말씀은 주님이 없는 길을 만드셨다는 것이며, 또한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함부로 걷지 아니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함부로 걷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라는 명사는 마땅히 걷다는 동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삶을 보십시오. 그 길을 걸어가시면서 누구와 어울리셨습니까? 그분은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를 만나셨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쩔 수 없는 사람들과 지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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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기분에 자주 빠집니다.

그냥 무엇에 홀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마다 갈릴리 청년 예수를 떠올리려 애씁니다.

진정 다가올 모든 세대들의 슬픔과 고통까지 연민으로 바라보며 기도하신 분,

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되새깁니다.

부끄러워 뒷걸음치는 나를 불러 나를 당신이 관심주시는 '작은 자'로 인정해주시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 주시는 그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