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또는 일기, 편지/오늘의 묵상

[날마다 묵상]141103「희망!」

DoDuck 2014. 11. 3. 13:51

[날마다 묵상]141103「희망!」


(막10:13-14))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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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갈멜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의 한마디에 간담이 서늘해져 광야로 도망갔던 엘리야처럼, 주일 예배를 드리고 힘차게 나섰던 걸음이 찬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머리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묵상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계절의 무한반복처럼 무한반복 되어 온 역사속에서 나의 작은 몸짓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걸 기대하는 것도 욕심이런가…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인격에 대해 가르쳤던 내용들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을 추스립니다.

세상은 진보했다면서, 왜 전쟁과 범죄는 그치지 않고, 세상의 악은 여전해 보이는가?

인간의 삶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짐승만도 못한 수준'의 인격을 가지고 태어나서, 모든 생명- 앞으로 태어날 모든 생명까지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성인군자의 인격'으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인격성숙을 중도에 멈춘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 의해 전쟁과 범죄가 계속 이어진다.

인격성숙은 육체에 영양을 공급해 주는 것만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다.

씨앗으로 간직하고 있던 공감의 능력, 이성의 능력이 누군가의 사랑에 의해 싹이 트고 자랄 때, 인격이 성숙해 가게 되는 법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성인군자의 인격을 요구하는 시대로 '착한 이웃' 정도로는 여전히 하늘나라를 이루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회란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아기를 낯선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착한 이웃'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는데, 어떻게 모든 생명- 앞으로 태어날 모든 생명까지 소중히 여기고 배려할 수 있도록 길러낼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란다.


하나님도 이러한 숙제를 우리가 과연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고 계셨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

오늘 예수님의 말씀도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길을 방해하지 마라!


더욱 훌륭한 스승을 찾아 부모 곁을 떠나는 일이 언제든지 가능한 세상, 

자기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훌륭한 스승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어제 만난 아기, 수호가 그런 세상에서 자랄 수 있기를!

풍성한 사랑으로 성인군자로 자라나서,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일'을 능히 감당해 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