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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027「무엇을, 어떻게?」

DoDuck 2014. 10. 27. 12:52

[날마다 묵상]141027「무엇을, 어떻게?


(마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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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토요일 밤과 주일 새벽으로 이어진 철야로 인해 교회에서 돌아온 뒤 그냥 곯아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아내가 몸이 아파서 출근길 운전을 대신해 주고 돌아오느라 말씀묵상이 늦어졌습니다.
오늘 아침 말씀은 괌아름다운연합교회 노진의목사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말씀을 전해주시는 몇몇 분 가운데 가장 간결하게 말씀을 전해주시기에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답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이 주신 말씀 중 가장 적극적인 말씀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저에게는 늘 부끄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지요.
따로 골방에서 기도하는 일이 적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중에 질문이 생겼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구할까요?"
어떤 이는 내게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말씀을 주며, 제발 잠잠하라고 하시던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동은 '가만히 있는 것'과 같은 걸까요, 다른 걸까요?
행복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둔 우상숭배자들이 종교지도자로 행세하는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을 채워달라고 쉴 새 없이 기도하는데, 
주님!  '그렇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도 괜찮은 건가요?

오늘도 다만 기도를 부탁받은 이들의 간구를 전달해드리며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되뇌이며,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를 반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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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할 때까지 구하고, 찾을 때까지 찾고,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오늘의 말씀은 제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의 욕망을 채우고 다시 또 다른 욕망을 채워나가며 끊임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소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위해 내가 목숨을 바쳐도 좋은 일을 발견했는지, 묻고 계십니다.
'내 모든 소유를 팔아 사고 싶을 만큼' 값진 보화가 숨겨진 밭을 발견했는지, 주님이 내게 묻고 계십니다.

어제 주일 설교는 심성훈목사님이 선교사 파송을 앞두고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르쳐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라는 제목으로, '두 쌍의 형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인 마태복음 4장 18-22절 말씀을 본문으로, '선교'라는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보여주며 당신 부부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그 설교말씀 중에 유난히 귀에 남아 있는 질문과 고백이 있는데, "누가 가장 행복한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심목사님은 두 가지 경우를 답변으로 고백했는데, 하나는 "죽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행복"과, 다른 하나는 "목숨을 바칠 만한 일을 하는 행복"이었습니다.
마침 오늘 말씀 묵상과 겹쳐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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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 한 구절,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간절한 마음으로 반복합니다.
그리고 요즘 날마다 드리는 기도를 덧붙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눈물로 바라보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짊어진 세월호가족들의 십자가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처럼 세월호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된 죽음으로 끝나버리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활까지 볼 수 있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