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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011「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DoDuck 2014. 10. 11. 06:51

[날마다 묵상]141011「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행 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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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연경 교수의 책 [네가 읽는것을 깨닫느뇨?]를 김재환 감독의 영화 [쿼바디스]의 소셜 펀딩에 참여한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직 다 읽어내지 못했지만 첫번째 chapter "성경, 해석과 만나다"를 읽고 행복해졌습니다.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 전도받아 교회를 다닌 후로 나도 성경무오설에 많이 휘둘려 왔었지요.

이미 고백했었지만,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분란을 일으키러 왔다고 선언하시는 마태복음 10장의 말씀을 읽고 충격을 받아 잠시 교회를 떠났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난 성경의 앞뒤 안 맞는 얘기들을 찾아 마음껏 교회와 교인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웃어도 내 마음속에 한 번 심어졌던 예수님의 사랑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스스로 혼자 따지고 묻고 하는 가운데, 정통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이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지만, 스스로 크리스찬임을 고백하게 되었지요.

나의 깨달음이 바른 것인지 스스로 자신할 수 없었지만, 난 적어도 정통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많은 이들에게 늘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은 마련하였습니다. 

성경속의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들이 거꾸로 나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였고, 거짓 목자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준 셈이지요.

정통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그래서 더욱 수구꼴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독교인을 만나면, "당신은 진정 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하는 말이냐?" 자꾸 도전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 살인마 전두환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목회자들의 설교는 아예 듣지 않고 살았습니다.


요즘 새롭게 공부하는 성서학당의 성경공부가 그래서 즐겁습니다. 권교수님의 글이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동안 묻고 도전하던 나의 노력이 쓸모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받은 것같아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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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사마리아 전도에 힘쓰던 빌립이 예루살렘과 가자를 잇는 길로 나아가라는 주의 천사의 말씀을 따라 그 길로 나아갔다가, 성령님의 인도로 거기서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고 돌아가던  에디오피아의 고관인 내시를 만난 장면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내시는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지요.

주인공은 빌립, 내시, 성령(혹은 주의 천사) 셋입니다.

나는 오늘날 이 장면과 같은 상황에서 누구의 자리에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는 많은 목회자들은 당연히 빌립의 위치에 있고, 성지순례를 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중이던 내시의 자리에는 평신도 교인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난 여기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정말 주의 천사, 성령의 인도로 나아 온 사람입니까?


도처에 고통당하는 이웃을 외면하고 그저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는 많은 목회자들.

출세와 성공의 신학에 매몰되어, 성도들을 기복신앙에만 묶어두고, 스스로도 자리다툼에만 몰두하는 그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가난한 자들은 으레 있기 마련이고, 몇 푼 적선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지. 난 더욱 중요한 일을 해야 해"라고 바꾸는 그들.

그들이야말로 "보고 듣고 깨달아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걱정거리일 뿐입니다.

난 그분들이 오늘 말씀의 장면에서 빌립은 커녕 에디오피아 내시의 자리도 당신들의 자리가 아님을 깨닫기 바랍니다.

주님이 그토록 책망하시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빨리 에디오피아 내시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