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황정’의 실존인물 ‘박서양’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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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721호 2010.01.26. 최영철 기자 -박영목 주간동아 인턴기자 연세대 의학과 4학년] |
SBS 월화드라마 ‘제중원’이 장안의 화제다. 드라마의 주 테마는 구한말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濟衆院·광혜원)’을 배경으로 신분의 차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사로 성공한 황정(박용우 분)의 일대기다. 드라마 속 황정이 실제 역사 인물임이 드러나면서 시청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황정은 백정(白丁) 출신이면서 한국 최초로 의사면허를 받고 독립운동까지 한 ‘박서양’을 모델로 하고 있다.
사람 대접 못 받던 어릴 적 이름은 ‘개새끼’ 의사 박서양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백정의 아들이 의사가 됐다’라는 정도로만 구전돼왔을 뿐, 지금껏 그의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최근 들어 그가 세상에 알려지고 제 가치를 인정받은 데는 연세대 의대 박형우(54·해부학교실) 교수의 숨은 노력이 큰 몫을 했다. 박 교수는 박서양의 일대기를 사료 고증을 통해 밝혀내 논문으로 엮었으며, 그가 쓴 ‘제중원’이라는 책은 드라마의 모티프를 제공하기도 했다. 박 교수가 드라마의 의학 자문을 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박서양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만약 드라마의 내용을 미리 알고 싶다면 박서양의 일대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에서 황정의 어릴 적 이름은 ‘소근개’로 근수가 적게 나가는 개, 즉 ‘개새끼’라는 의미다. 그만큼 당시 백정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최하층 신분인 박서양이 의사가 된 것은 박서양의 아버지 박성춘과 제중원 의사 에비슨(O. R. Avison·제중원 4대 원장)의 ‘운명적 인연’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박성춘을 에비슨이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치료했기 때문.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박성춘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를 스승처럼 따랐다고 한다. 콜레라도 박서양이 의사가 되는 데 한몫했다. 1895년 6월 콜레라가 만연하기 시작하자 조선 정부는 에비슨을 방역 책임자로 임명했다. 에비슨의 노력 끝에 콜레라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조선 정부는 에비슨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방 백정들의 해방을 탄원했다. 박성춘을 비롯한 다른 백정들의 탄원도 함께 제출됐다. 결국 1896년 2월 백정들에게도 면천(免賤)이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즉, 박서양에게 의사가 될 길이 열린 것이다. 박서양은 결혼 이후 본격적으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에비슨은 박서양의 결혼식장에서 “아들놈을 병원으로 데려가 사람 좀 만들어달라”는 박성춘의 부탁을 받고도 제중원의학교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박서양을 병원으로 불러 청소, 침대 정리 등 온갖 궂은일을 시켰다. 박서양이 힘든 일을 아무 불평 없이 처리하자 에비슨은 비로소 그에게 의학 책을 읽게 했다. 뒷날 밝혀진 일이지만 에비슨은 박서양의 사람됨을 알기 위해 일부러 그를 시험했다. 결국 박서양은 다른 6명과 함께 1908년 졸업시험을 통과해 한국 최초의 의사면허를 받았다. 박형우 교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의학 공부에서 필요한 덕목은 ‘성실성’으로, 박서양의 인간됨을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만주 무대로 의료활동, 동아일보 기자로도 활약 학교를 졸업한 박서양은 모교 제중원의학교의 전임교수로 화학, 해부학 등을 가르치며 외과 환자를 진료했다. 그러나 그는 의사로서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돌연 간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구세병원과 숭신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간도 지역의 조선인 자치기구이자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에서 군의(軍醫)로 임명돼 의료를 담당했다. 박서양은 이때 동아일보 간도지국 기자로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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