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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박제된 위인에서 인간 이순신으로(오마이뉴스 041126)

DoDuck 2006. 12. 6. 05:11
박제된 위인에서 인간 이순신으로
[오마이뉴스   2004-11-26 06: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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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석희열 기자]23전 23승. 400년 전의 전쟁 영웅 이순신이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긴 칼 옆에 찬 서울 세종로 동상에서의 박제된 위인의 모습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인간적인 '맨얼굴'로 우리 앞에 돌아온 것이다.

"인간이냐, 영웅이냐 라는 것은 거짓 이분법이다. 인간이면서 영웅이다. 이순신은 역사 속에서 왕조의 이해, 정권의 이해, 국가의 이해를 위해 숱하게 불려나왔고, 결국 자기희생적인 성웅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비현실적이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를 덮고 있는 포장을 벗겨내고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 이순신을 되살려내야 한다. 그는 시대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전위적인 인물이었다."

당대 동아시아 최대의 사건이었던 7년 전쟁 임진왜란과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명장 이순신을 새로운 시각과 입체적으로 살려 낸 장편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황금가지 펴냄·전8권)의 작가 김탁환(36·한남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평소 이순신론이다.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초청으로 25일 오후 한양대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된 '저자와의 만남'에 참석한 김 교수는 "과거 군사정권에 의해 박제된 위인 이순신을 이제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으로 되살려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나를 만든 책, 내가 만든 책'이라는 주제로 청중과의 대화를 시작한 김 교수는 "청소년 시절 읽었던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죄와 벌>이 내 작품세계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자신의 문학관을 소개했다.

자기 합리화 위한 정치권의 '이순신 담론'은 해석의 '아노미'

김 교수는 <불멸의 이순신>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순신은 안중근과 함께 교양인물소설로 가장 쓰고 싶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면서 "1592년 전쟁 이후 관군이 유일하게 승리하고 있던 곳이 이순신이 이끄는 함대뿐이었다는 데 특히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의 '이순신 신드롬' 현상과 관련 "각 시기마다 역사적인 인물들이 광장으로 불려나오곤 했다. 지금은 이순신이 이야기될 수 있는 시기"라며 "이순신은 나라를 구한 표본으로 도덕적, 업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 열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정치인들 사이에 정견의 차이나 좌우 정파에 관계없이 이순신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끼워 맞추는 이른바 '이순신 담론'이 넘쳐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극좌에서 극우까지 이순신을 말하는 것은 희한한 현상"이라며 "일종의 해석의 아노미"라고 풀이했다.

‘원균=악의 화신, 이순신=선의 화신’ ?

"임진왜란 당시 원균, 신립 등 당시 다른 장수들은 기존에 해왔던 방식대로 오랑캐를 상대하듯 치밀하지 못한 전법으로 왜군과 싸웠지만 이순신은 치밀하고 독자적인 전술로 국가 대 국가 간의 전면전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다. 원균은 대대로 이어져온 무신집안의 아들로 무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반면 이순신은 조정에서 버림받은 처사의 아들로 태어나 울분과 방황의 시절을 겪었다. 서로 대비되는 이런 환경 때문에 원균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이순신은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적을 상대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에서의 등장인물과는 달리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냉철하고 신중해야 한다"며 '원균은 악의 화신으로, 이순신은 선의 화신으로' 부각되는 세계관을 경계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7년 전쟁 임진왜란에만 초점을 맞춘 이광수의 장편소설 <이순신>에는 민족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는 민족개조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순신의 적은 왜군 장수인데도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의 입장에서 이순신과 원균이 대립하는 것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흔히 이순신은 원균으로 상징되는 모함하는 장수와 대신들과의 대립점에 서있다. 이 대립각의 뿌리는 이광수의 장편소설 <이순신>이다. 이광수는 이순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악하다고 설정함으로써 조선과 왜국의 대립을 조선인 내부의 대립으로 바꿨다. 이광수의 이런 시도에는 민족개조론적 발상이 깔려 있다.

이순신의 대립 상대는 원균이 아니라 왜군이며, 선조였다. 전쟁 영웅 이순신은 '국가는 백성'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짐은 곧 국가'라는 현실권력자 선조와 대립할 수밖에 없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에 비해 원균과의 대립은 전쟁 전략에 대한 방법론적 차이일 뿐이었다."

박정희가 이용한 전쟁 영웅 이순신

김 교수는 또 박정희의 정권 안보 목적의 이순신 이미지 왜곡에 대한 비판도 쏟아냈다.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군사정권이 정권 유지 목적으로 이순신을 '성웅화'하면서 상관에게 '개기는' 부분은 모두 빼버리고 오로지 충효의 화신으로 박제하여 국가 이데올로기에 이용했다는 것.

"군사정권 시절 이순신은 충효, 멸사봉공의 화신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백의종군 후 고뇌하며 선조와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은 쏙 빼버리고 오로지 효를 다하며 나라를 위해 전사한 것으로만 부각시켜 이순신을 불러왔다. 당시 이순신은 자신이 충성하는 대상이 선조인가, 조선인가, 민중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했다. 이 부분에서 박정희가 이용한 이순신의 이미지와 실제 이순신은 극명히 대비된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이순신은 끝까지 무장 본연의 길을 지켰다."

신화에서 인간으로 되살아난 이순신

소설 <불멸의 이순신>의 지은이 김탁환 1968년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부터 3년간 해군사관학교에서 국어교수로 있으면서 이순신의 삶에 관심을 가져 <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허균, 최후의 19일> <압록강> <독도 평전> <나, 황진이>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방각본 살인 사건> 등이 있다. 이외에도 문학 비평집 <소설 중독> <진정성 너머의 세계> <한국 소설 창작 방법 연구> 등을 출간했다. 현재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쟁 영웅 이순신에 대한 인간화 복원작업도 이날 화두로 등장했다. 김 교수는 "가장 빛나는 일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나머지 일대기를 덮어버리면 위인전이 된다"면서 "지금까지 묻혀있던 이순신의 10~30대에 대한 사료를 발굴하여 그의 일대기 모두를 비추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순신 일대기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순신에 대한 이미지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인 마지막 7년에만 너무 집중돼 있었다. 그래서 10대~30대 부분도 포함하는 그의 일대기 모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사료를 발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실제로 10대~30대는 이순신에게 있어 어려움과 굴곡이 많은 시기였다.

이러한 처절한 시련이 나중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특히 무과에 급제한 이후 부임지에서 탄핵을 당하기도 한 이순신은 30대를 상관과 사사건건 다투며 보냈다. 부딪치고 깨지며 성장해간 것이다. 이걸 무시하고 7년의 성공으로 48년을 덮어씌우면 그건 위인전이다."/석희열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