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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Duck 2006. 3. 27. 21:59
여&남
편견 어둠 기지촌 여성에 희망의 등불로
▲ 지난 17일오전 서울 수유동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에서 성매매 여성 지원단체 활동가들과 기독교장로회 관계자들이 모여 ‘두레방 창립 20주년 기념예배’를 올리고 있다. 두레방 제공

여성인권 지원 ‘두레방’ 창립 20돌

서로 다른 처지를 인정하고, 사랑만 하기에도 숨가빴던 시간이었다. 지난 17일 오전 11시 서울 수유동 한신대학원. 성매매 지원단체 활동가, 기독교장로회 관계자 등 250여명이 모여 경기도 의정부 기지촌 여성인권보호단체 ‘두레방’의 20주년 기념 예배를 올렸다.

두레방은 지난 86년 문동환 목사의 부인인 문혜림(70·페이 문)씨가 경기도 의정부에 만든 기지촌 지역 여성 지원단체다. 미국인으로 태어난 그는 한국인 남편을 따라 우리 현대사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었다. 61년 한국으로 온 그는 남편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 두번이나 감옥에 갇힌 사이,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미군 부대에서 일했다. 이 과정에서 기지촌 미군 전용 클럽에서 미군들을 상대하는 한국 여성들이 법적·의료적 어려움을 호소할 데가 없다는 걸 깨닫고 그는 그런 여성들을 돕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두레방의 시작이었다.

남편 따라 민주화운동 뛰어든… 문동환 목사 미국인 부인 문혜림씨
86년 기지촌여성 위해 문열어… 이젠 대중운동으로 전환 채비

두레방이 풀어야 할 과제는 다양했다. 기지촌 주변 여성들의 선불금, 임금체불, 국제결혼, 이혼 등 법률적인 문제 해결 지원과 함께 제빵, 공예 등 자활프로그램을 운영해 전업을 도왔다. 의료·생계 지원도 맡았다. 기지촌 여성에 대한 편견 탓에 운영비 지원은 국내 후원이 힘들어 오랫동안 외국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나라에서 두레방을 지원하기 시작한 건 고작 지난해 연말부터였다.

이날 미국에 거주하는 창립자 문혜림씨는 건강이 여의치 않은 탓에 비디오 영상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돕는 게 중요하다”며 “가난에 쫓긴 여성들이 기지촌에 온 상황을 알게 되면 그들이 피해자인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기술을 가르쳐야겠다 싶어 처음으로 빵을 만든 날, 빵 하나를 둘이 나눠먹었어요. 이게 바로 성찬식이구나 싶었죠.”

아내 대신 행사에 참석한 문동환 목사는 “어떤 의미에서 그들(기지촌 여성들)이 나를 구원했다”며 “죄인은 그들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우리 자신”이라며 사회적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 장녀 문영미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감사패를 받았다.

2003년 정부가 성매매방지법을 시행한 뒤에도 두레방은 한동안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빈 목사(강남 동광교회 담임목사)는 “기지촌 주변 여성 문제는 미군, 제국주의, 여성인권, 성매매, 이주여성 문제 등이 중층적으로 작용하지만 사회적 편견 탓에 지원이 부족해 늘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영님 두레방 원장은 “보통 사람 다수가 참여하는 운동으로 전환해 이를 통해 기지촌 주변 여성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명예회복을 돕고 싶다”고 활동 계획을 밝혔다. (두레방 후원 농협 552-01-009307 유영님)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낮은곳 돌보는 아내에게서 깨우침 얻어”
문동환 목사가 말하는 문혜림씨

문동환 목사(85)는 민주화 투쟁의 뒤안길에서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내의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날만은 ‘문혜림 선생의 남편’으로 연단에 섰다. 문 목사는 목회자이자 민주화 투사였으며, 전 평민당 부총재를 지냈다. 타계한 늦봄 문익환 목사의 동생이기도 하며 최근엔 6·15 공동선언 남북해외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 목사는 젊은 시절 아내와 한 약속대로 은퇴한 뒤 미국에서 살고 있다. 민주화 투사인 남편의 아내로, 2남2녀 아이들의 엄마로, 기지촌 여성들의 대모로 살아온 문혜림씨의 삶은 남편인 문 목사에게도 남다른 울림을 준 듯했다. “아내는 두레방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고, 저는 그런 아내에게서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문혜림씨는 남편이 구속될 때마다 보라색 한복을 입고 시위를 벌인 것으로 유명했다. 문 목사는 문화적 배경과 피부색을 뛰어넘는 아내의 편견 없는 마음가짐을 높이 샀다. 그는 “스스럼 없이 시골 사람들과 함께 장구를 치던” 아내를 떠올리며 “지금도 미국에 사는 한국인 여성들을 자주 만나 어울린다”고 안부를 전했다. 이유진 기자





기사등록 : 2006-03-21 오후 08:09:03 기사수정 : 2006-03-22 오전 02:0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