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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빅맨 빅보이스* Thomas Quasthoff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

DoDuck 2006. 2. 23. 11:31
♣빅맨 빅보이스-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악가이야기

[문학예술]132cm 작은 체구의‘큰 울림’…‘빅맨 빅보이스’


탈리도마이드 기형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성악계의 스타로 우뚝 선 토마스 크바스토프. 동아일보 자료 사진
◇빅맨 빅보이스/토마스 크바스토프 지음·김민수 옮김/350쪽·1만5000원·일리

올 2월 어느 날 아침, 독일 베를린의 한 호텔 레스토랑. 작은 사내가 뒤뚱거리며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기자가 다가가자 사내는 갑작스러운 동양인의 접근에 놀란 듯 눈을 둥그렇게 떴다.

“크바스토프 선생이죠. 뵙게 돼 반갑습니다. 저는 베를린 필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을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래틀은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죠. 인터뷰 잘 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에도 꼭 한번 와서 노래를 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



악수를 청할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손이 어깨에 바짝 붙은 장애인인 그가 악수를 반기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독일 최고 권위의 음반상인 에코상과 두 차례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세계 정상급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그와의 짧은 만남이었다. 이 책은 키 132cm의 단신에 손가락이 7개밖에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정상급 성악가로 우뚝 선 이 ‘작은 무대영웅’의 자서전이다.

그는 1959년 팔다리가 없다시피 짧은 상태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그를 임신한 동안 탈리도마이드(1950년대 입덧 방지제로 애용되다 기형아 출산 부작용으로 판매 중지된 약)를 복용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혼자선 일어설 수도, 용변도 볼 수 없어 땀과 대소변으로 범벅이 되는 어린 아들을 정성껏 닦아 주며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그의 집은 불행에 짓눌린 어두운 가정은 아니었다. 부모는 음악 듣기와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성악도 출신인 아버지가 TV 아마추어 가곡 자랑 대회에서 입상한 뒤 노래와 함께하는 가족의 생활은 흥겨움을 더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던 토마스는 친절하고 유능하며 아름다운 소프라노 샤를로테 레만 선생의 지도 아래 정상의 성악가로 꿈을 키워 나갔다.

그에게 세상이 마냥 친절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음대 입학을 거부하는 학장들, 콩쿠르에서 그에게 지자 “네가 장애 때문에 혜택 받은 거야”라며 야유하는 경쟁자들…. 그러나 그는 ‘기를 꺾어 놓는 야유’와 ‘격려를 위한 조언’을 구분할 줄 알았다.

독일 음악비평계의 황제(Kaiser)로 불리는 요아힘 카이저가 ‘아직 표현력과 열정, 조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하자 그는 오히려 ‘나를 제대로 된 성악가로 대접하는구나’ 하고 힘을 냈다. 지난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 선 그에게 카이저는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암포르타스 왕 연기가 마치 자신의 괴로움을 형상화한 듯하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오늘날 50cm 높이의 대(臺)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이 없었다면 이 모든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행복한 삶을 꾸려 가기만 한다면 부모님은 더 바랄 게 없으시단다. 그러니 절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3Dgustav@donga.com">gustav@donga.com

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code=j__&n=200508130007&main=1

 

육체의 감옥서 탈출한 '큰 사람'의 '큰 목소리'

빅맨 빅보이스
토마스 크바스토프 지음 | 김민수 옮김 | 일리 | 350쪽 | 1만5000원
입력 : 2005.08.11 18:41 10' / 수정 : 2005.08.11 18:43 59'


 

1977년 독일 하노버음대 학장실. 1m32㎝의 단신에 손가락은 7개 밖에 없고, 팔·다리도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장애 학생이 방에 들어왔다. 이름은 토마스 크바스토프. 이 학생은 성악도가 되기를 진지하게 소망했지만 학장의 답변은 차갑기만 했다.

“이것 보세요. 독일의 교육법상 성악과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한가지 악기는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피아노라든지….”

크바스토프의 아버지는 “아들의 손가락은 열개가 안된다”며 항의했지만 “자제분은 입학 자격 미달”이라는 쌀쌀한 거절만 날아왔다.

크바스토프. 그래미상(賞)을 2차례 수상하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콜린 데이비스, 정명훈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 협연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차있는 정상급 바리톤. 하지만 그의 출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950년대 유럽의 임산부들이 입덧을 없애기 위해 복용하던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크바스토프는 손과 발이 앞으로 제대로 뻗지 못하고 물개처럼 뒤로 꺾인 채 태어났다. 육체가 악기인 성악가에게 그 육체가 감옥이 된 것이다. 홍역과 볼거리, 10차례가 넘는 감기로 갓난 아이때부터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고, 의족을 한 채 운동장을 걷느라 학교 친구들의 조롱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음대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해 법대에 진학해야 했고, 은행 홍보실 직원, 라디오 방송 진행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하지만 끝끝내 하고 싶었던 일이 음악이고 노래였기에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때로는 “노래하는 기계인간”라고 ‘자조(自嘲)’했지만, “50㎝ 높이의 단상과 1m 정도의 의자에 앉은 키 70㎝의 바리톤이 앉는다면 지휘자와 충분히 눈을 맞추며 노래할 수 있다”며 ‘자조(自助)’하기도 했다. 마침내 1988년 ARD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발판을 마련했다.


무대에서 오페라 배역을 소화하기 힘든 신체적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정적(靜的)인 자세로 노래할 수 있는 슈베르트나 슈만의 가곡을 치밀하게 연구하는 대목에 이르면, “사람들이 내 신체에 흥미를 갖기를 원치 않는다. 단지 연주로만 평가받고 싶을 뿐”이라는 그의 포부가 얼마나 치밀하면서도 원대한 것인지 눈치챌 수 있다. 크바스토프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도움으로 오페라 ‘피델리오’에 출연하며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깨나갔다.

크바스토프가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형의 도움을 받아 쓴 이 책은 신파극 같은 과장으로 억지 눈물을 쥐어짜기보다는 대체로 진솔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는 장애인의 성공 사례도, 인생의 충고자도 아니다. 단지 장애인들의 신체적 결함이 심각한 핸디캡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티눈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크바스토프의 꿈에는 분명 소박함이 깃들어있다. 그렇기에 ‘큰 사람 큰 목소리’라는 책 제목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일 지 모른다.

크바스토프는 “삶 자체는 오류의 연속이며, 부분적으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삶을 순수하게 바라보거나 끊임 없이 예술을 표상하다보면 고뇌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한다. 슬픔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듯하다가도, 그것을 삼키고 너무나 온화하고도 담담한 목소리로 불러낸 크바스토프의 ‘겨울나그네’(슈베르트) 음반을 듣다보면 이 경구(警句)가 그의 삶에 얼마나 크나큰 힘이 됐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무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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