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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수 박 이야기(우먼타임스에서 펌)

DoDuck 2005. 3. 28. 23:23
세계 최고의 아동문학상 수상한 린다 수 박
“한국도공의 장인정신 세계아동에 알리고파”


<사금파리 한조각>의 무대가 된 전북 부안군의 유천도요에서 도자기를 빚는 도공. 목이의 후예인 그의 손에도 한국의 장인정신과 철학이 녹아있다. <사진제공/전북 부안군청>

동양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아동문학상 ‘뉴베리상’을 수상한 린다 수 박( 42. 한국이름 박명진)은 1녀 1남을 키우고 있는 여성 작가다. 아일랜드 사람인 벤 도빈과 결혼한 그는 아들에게는 아버지 박응원씨의 성을 넣어 숀 박 도빈이라는 이름을, 딸에게는 어머니 김정숙씨의 성을 넣어 애너 김 도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부모성 함께 쓰기를 누구보다 먼저 실천한 것이다. 뉴욕주 로체스터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뉴베리상 수상작 <사금파리 한 조각>의 한국판 발간을 계기로 최근 고국을 방문했다.



美전역 도서관서 선풍

12살의 고려 소년 도공 세계를 누비다

월드컵 성공 개최라는 자축 뒤에 우리는 한국을 알아주는 외국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덧붙인다. 아시아 하면 으레 중국과 일본을 떠올리는 서양사람들에 대한 야속함이 우리 의식 한가운데 그늘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제대로 알려지려면 월드컵보다 한국에 촉촉히 젖고 싶어하는 문화 마니아들이 많아져야 한다. 세계 어린이들의 손에 한국 이야기를 담은 책을 들게 하는 것은 마니아를 만드는 지름길. <아라비안나이트>나 <안데르센 동화>,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해리포터>처럼 세계 어린이들 손에 읽히는 한국 이야기에 대한 꿈이 <사금파리 한 조각(A Single Shard)>을 통해 시작됐다.

세계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뉴베리상’을 수상하면서 이 책은 미국 전역의 도서관에 꽂히게 되었고,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 종합 4위를 기록했으며, 미국 부모들이 선택한 가장 인상적인 책으로 선정됐다. 뉴욕 공립도서관은 100권의 필독서 중 한 권에 <사금파리 한 조각>을 선정했다.

저자인 린다 수 박은 이 책과 함께 색동한복을 입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책 속 주인공 목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목이는 바로 세계 최고의 도자기, 고려청자를 만든 소년 도공. 그 속에는 도자기를 빚는 한국인의 장인정신과 철학이 녹아 있다.

의무보다 매력 이끌려

목이는 도자기를 빚고 싶어하는 12살 소년. 린다 수 박은 바로 그 12살 때 한국을 방문했었다. 12살 소녀의 눈에 비친 고국 땅의 한옥과 마당, 그리고 하늘은 고스란히 어린 가슴속을 채웠고 그후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12살로 태어난다.

한국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간직하고 있지만 그는 한국말을 못한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으로 유학간 부모님들의 교육 방침 때문이었다. 그가 성장했던 시카고 근교 일리노이즈는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도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친구들로부터 ‘칭크’(중국인들을 비웃으며 사용하는 말)라는 말을 들으며 유색인종의 소외감을 톡톡히 느껴야 했다. 그의 부모는 이런 환경 속에서 딸이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영어 교육만 시켰다. 집에서도 반드시 영어를 사용하게 했다. 할머니까지도 눈빛만으로 의사를 표현할 정도로 한국말은 금기였다.

스탠퍼드대를 나와 더블린대와 런던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은 그가 한국역사를 소재로 한 글을 쓰게 된 것이 오히려 아이러니컬한 일. 그러나 한국적인 소재를 선택하는 데 언어는 장벽이 되지 못했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의무감보다는 자신을 흥미롭게 하는 매력이 있어 한국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 밖이라는 일정한 거리는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을 주었다. 카메라가 영상을 잡기 위해 피사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듯 린다 수 박도 그만큼의 거리에서 한국을 조명할 수 있었다.

그를 한국에 심취하게 만드는 데 아이들의 성장도 한몫 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나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싶어했고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글을 읽어나갔다. 철저하게 영어를 고집했던 그의 부모는 그때부터 그의 훌륭한 조언자가 되었다.

첫 작품은 1999년 출간된 <널뛰는 소녀(Seesaw Girl)>. 바깥 출입이 제한되던 조선시대 12살 소녀가 담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어 널을 고안해낸다는 발랄한 상상으로 엮은 책이다. 이어 2000년 출간된 <연싸움(The Kite Fighters)>은 한국 전통놀이를 바탕으로 형제간의 경쟁과 우애를 그렸다.

2001년 출간한 것이 <사금파리 한 조각>이다. 엑설런트(excellent)라는 표현이 들어간 3줄의 설명에서 시작된 관심은 한국청자가 어떻게 그 형님뻘인 중국 자기와 다른 독자적인 모습을 갖추면서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얻게 되었는가를 분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 속에 잘못된 부분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부분은 있어도 진실을 왜곡하는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많은 자료를 검토했지만 그래도 생기는 부족함은 작가로서의 상상력에 의존했다고 밝히는 그는 한국말은 못해도 한국음식을 먹고 명절을 즐기는 한국인임을 분명히 한다.

‘독서광’아버지에 큰영향

린다 수 박은 ‘뉴베리상’을 수상하면서 이 상을 아버지에게 바쳤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아버지의 교육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2주에 한 번은 그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찾았다. 아버지의 손에는 늘 읽어야 할 책들이 메모돼 있었다.

9살 때 처음으로 어린이 잡지에 시가 당선되어 원고료로 1달러를 받자 아버지는 그것을 액자에 고이 넣어 걸어두었다. 글을 써서 상을 탄다는 것에 긍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도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기 전에 먼저 읽어본 뒤 함께 책에 대해 토론한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도록 다양한 주제를 끌어오는 것은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녀독서지도의 모델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듯이 책을 읽는 방법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책 앞으로 오게 하려면 책 읽기가 컴퓨터만큼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의 역할은 거기에 있다.

한국이야기 계속 출간

내년 가을쯤 출판될 책은 봉화수의 아들을 다룬 이야기이며 음식 칼럼니스트라는 전력을 가진 그답게 비빔밥을 소재로 한 작품도 탈고할 계획이다.

그는 또 작품을 쓰면서 10만 명이 넘는 미국 속의 한국인 입양아들과 친해졌다. 미국 가족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혈연 없이도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그는 목이를 민영감의 양자가 되게 했다.

그는 휴가를 얻어 한국을 다시 찾을 계획이다. 쫓기듯이 지나가는 바쁜 일정 대신 여유 있는 시간에 한국을 찾게 되면 그는 작품 속 주인공 목이가 살았던 전북 부안군 줄포를 찾을 생각이다.

묘한 것은 소설의 배경이 된 줄포는 그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연상하게 하는 수박을 재배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사실. 인근에 애국가 화면에 등장하는 유천 도요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 한국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게 된 린다 수 박이 그려줄 이야기에 더욱 기대가 간다. 우리 것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함영이 기자 메일보내기 블로그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