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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과태료 정산이 아니다.(창골산칼럼 제182호)

DoDuck 2006. 3. 29. 23:14

기독교를 비방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의 회개를 가리켜
일주일 동안 마음껏 죄를 짓다가
주일에 나가서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미안한 마음에 돈 봉투 하나 내밀고서는
마음의 죄책감을 털어내고 온다고 말을 한다.

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인들의 회개와 예배는
부과 받은 과태료를 정산하는 수준밖에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하셨다.

죄를 지은 사람이 송아지를 끌고 와서
속죄제사의 제물로 드리는 것이
교통위반으로 내는 과태료와는 어떻게 다를까?

우선 죄의 경중에 따라서 달라지는
과태료와는 다르게
속죄제사의 제물은
자신의 신분이나 형편에 따르게 되어있다.

즉 제사장이나 족장이라면
그 신분에 따라 정해진 제물을 드려야하고
평민이라면 자신의 형편에 따라
제물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
적어도 형편이 어려워 속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둘의 차이점은
그것이 무슨 성격으로 드려지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태료는 그 사람의 소유를 내는 것이지만
속죄제사의 제물은
드리는 사람의 생명이 되어 드려진다.

어떤 사람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속죄제사의 제물을 제단 앞에 끌어오면
먼저 그 동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한다.

안수하는 행위는
자신의 죄를 전가하는 것인데
그 동물이 자신의 이름으로 죽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속죄 제물로 드려지는 동물은
제사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죽고
그 생명이 되어 죽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죽는 동물을
직접 죽이고 그 피를 받아내게 하시며,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며
내장을 모두 꺼내 물로 깨끗이 씻은 뒤에
그 모든 것을 불로 태우게 하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죄의 형태가 어떻게 나타났든지
그것의 크기와 모양에 상관없이
죽음으로서만 해결될 수 있음을...

죽여서 가죽을 벗겨 각을 뜨고
물로 씻어 불로 태우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죄가 남김없이 처리되어야 하는지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다.

더구나 언제든지 죄를 짓고 와서
과태료를 물고 돌아서도 좋을 무엇이 아니라
생명으로 대신해야할 죄라고...

주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께서
나의 생명이 되어 죽으신 자리이다.

내가 죽은 십자가 앞에서 멀쩡하게 살아서
죄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이제라도 그 생명을 십자가에 넘기자.

그리고 선언하자!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몸이라고...

회개는 과태료 정산이 아니라
생명의 거듭남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칼럼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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