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또는 일기, 편지/나의 신앙고백

어느 종교다원주의자의 신앙고백(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고찰) ①

DoDuck 2006. 2. 5. 23:04
 

어느 종교다원주의자의 신앙고백

-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고찰 -


 

  나는 기독교인이면서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기독교인들은 때때로 같은 기독교인들에게 이단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심지어는 적그리스도, 마귀의 세력으로 매도당할 때도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나의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는 어떤 생각에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보다 세밀히 살피고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을 분명히 하여, 다른 이들로부터 이에 대한 견해를 청취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유신론자임에 틀림없다. 확인하진 못했지만 종교다원주의자들 가운데는 심지어 무신론도 또 하나의 종교적인 태도로서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라는 것도 다양한 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타종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인지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다. 타종교에 대해서 수용적인 태도를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수용적인 태도”라는 게 무얼 뜻하는지 적어놓고 보니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관용”이라는 개념에 대한 중고교 도덕교과서의 설명과 비슷한 뜻일 텐데,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무조건 배척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라는 틀 안에 남겨줄 수 있는 태도”, 더 쉽게 말해서 “생각이 일치하지 않지만, 상대방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생각의 차이가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동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세” ……. 그래, 그렇다. 동지라는 다소 강한 어감의 표현으로 분명히 강조되어야 한다.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형제다. 동지다.

  어쨌든 무신론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나는 무신론이 절대적으로 잘못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신론자가 될 수 있고, 어쩌면 나도 무신론자가 될 수도 있었을 개연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나는 무신론자를 수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무신론자를 나의 동지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나는 무신론자인 나의 형님을 사랑한다. 나는 무신론자인 형과 사후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으로 인해 “주님, 만일 그가 주님을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다시 한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도록 주관하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만큼 형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주님이 나의 그 기도대로 해주시지 않는다하더라도, 다시 말해 죽음 이후 형님과 나의 갈 길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나는 주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내가 형님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형님이 사후에 걸어갈 그 길을 나는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인 나의 형님과 동지가 아니다. 기껏해야 서로 동지가 되기를 바라는 관계이거나, ‘동지는 아니지만 함께 길을 가는 동안 싸우며 지내지는 말자’고 합의된 사이 정도일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일단은 내가 무신론자도 아니고 무신론을 수용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 같다. 물론 어떤 이들은 무신론자이고, 어쩌면 나도 무신론에 빠져들 수 있는 개연성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인정하지만, 나는 내가 무신론을 수용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쯤에서 잠깐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야겠다. 생각이 이처럼 다른 경우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옳을까?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바람직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데, 바로 이 문제에 도달해서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나아가 이 비교적 사소한 차이가 오히려 더욱 심각한 분열과 분란을 일으켜서 화평이 깨지기도 한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갈등보다, “유신론자들은 무신론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의 입장 차이나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더 심각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생각이 다른 경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옳을까 짚고 넘어가자.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