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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211「젖먹이에서 어린이로!」

DoDuck 2014. 12. 11. 14:13

[날마다 묵상]141211「젖먹이에서 어린이로


(고전3:1~2)[개역개정]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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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젖먹이와 같은 수준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이유식을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니 "성경 66권의 말씀이 대체로 '젖'으로 비유될 수 있는 말씀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 아니!

나같은 젖먹이에게는 누군가 '부름받은 이'가 잘 갈아 주셔야 소화시킬 수 있는 음식재료라고 해야 하나요?


젖먹이와 같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이 땅의 목사님들이 과연 이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걱정입니다만, 제게는 예수살기 목사님들, 평화를만드는교회의 목사님, 나의 누님 목사님, ……, 많은 분들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제가 경험하고 제가 깨달은 것들이 과연 바른 것인지, 제가 만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었는지 궁금할 때가 많은데, 여쭙고 상담할 수 있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또한 제게는 그런 분들로 여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교제가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제가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동행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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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 영성수련회에서 관상기도를 경험하고 왔습니다.

미리 담임목사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지난주일 오후 목사님께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하시면서 '러시아 영성의 고전'으로 알려진 <기도>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더랬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짧은 기도문을 쉬지 않고 반복해서 암송하는 가운데 깊은 영적 체험을 한 러시아 무명의 작가가 쓴 이야기였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말씀에 사로잡힌 작가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고 스승들을 찾아 가르침을 받은 얘기지요.

교회에서 잠깐 저도 이 기도문을 암송했고, 틈틈이 계속 암송했습니다.

그런데 관상기도를 인도해주신 은명교회 이민재목사님께서 또 이 기도를 소개해주시고,관상기도를 연습하는 중에도 걷는 기도를 할 때에 이 기도를 드리게 했습니다.

저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길로 저를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제게 일어났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관상기도를 연습하는 중에 내게 생긴 의문들이나 깨달음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그런 생각들도 분심으로 여기고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려 했기 때문에, 아직 여러분과 나눌 수 있을 만큼 깊이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 내게도 열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몸; 듣기]에서 고백한 것처럼, 제가 하게 될 하나님의 신비 체험이 12월 전쟁설을 유포시킨 어느 여전도사의 얘기처럼 황당한 것이 되지 않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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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께서 직접 내게 들려주신 말씀이 성경 66권의 말씀과 배치되는, 이미 주신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성경말씀이 아직 우리가 소화할 수 없어서 젖먹이에게 젖 먹이듯 주신 말씀일지라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뒤에는 버려야 할 독약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 66권의 말씀에 비춰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상기도의 성서적 근거'는 무엇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이번 연습 중에도 분명히 말씀해 주셨을 텐데 기억나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DAUM 검색결과 첫머리에 [관상기도의 성서적 근거-권명수]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제 블로그에 스크랩해두었습니다. 

관상기도에 대해 가톨릭이나 불교의 수련방법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 그래서 관상기도에 관심두지 말라고 권면을 받았을 이 땅의 불쌍한 성도들이, 이 글을 읽고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