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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141204「일용할 양식」

DoDuck 2014. 12. 4. 12:15

[날마다 묵상]141204「일용할 양식


(마6:11)[개역한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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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얻습니까?
수고하고 땀흘린 댓가로 얻고 있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얻고 있나요?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b)는 말씀으로 인해, 혹시 땀흘린 댓가로 얻어지는 것이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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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발견한 질문입니다.
이밖에도 더 많은 질문들을 캐내고 있습니다.
내게 질문은 느낌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 보물같은 것들인데, 좋은 보물들을 발견한 기쁨이 샘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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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나의 땀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땀에 대한 보상이 아닌 경우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땀에 대해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일용할 양식도 땀에 대한 보상으로서가 아니라 누구나 무조건 받아야 할 기본권으로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기본권이 실현되는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나님께 비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 나의 수고로 챙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실 것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셨던 일용할 양식, 만나와 메추라기를 생각합니다.
그 기적이 가나안 땅에 들어서면서 그쳤던 이유를 생각합니다.
야고보서의 가르침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5-17>
을 생각합니다.
광야에서의 특별훈련을 마치고 이제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니네들 일용할 양식은 니네가 벌어 먹어!"라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이제 특별훈련을 마쳤으니 너희가 세상에 나아가 그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라! 내가 가르쳐 준 법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법을 세상에 보여줘라!"는 것이었을까요?
야고보서의 가르침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여, "누구든지 일용할 양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라"는 명령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을 잠깐 필요할 때 쓰고는 내다버리는 이 슬픈 세상에서, 진정한 복음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복음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 일용할 양식-기본소득의 실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