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또는 일기, 편지/나의 신앙고백

(일기) 2009년 중구용산지방 장로 과정 첫날

DoDuck 2009. 1. 6. 13:05

  학교에서 배드민턴을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모처럼 운동을 했다. 시간이 늦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는데, 내가 빠지면 게임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망설였다. 조부장님이 차로 상동교회까지 바래다 주기로 하여 5시 30분까지 배드민턴을 치고 상동교회로 향했다.

  집에 두고 온 담임목사님의 추천서 때문에 마음이 걸렸는데, 다행히 목요일까지 시간을 주셨다. 임정빈 목사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임봉빈 권사님이 먼저 오셔서 등록을 하시고 예배실 앞쪽에 자리를 잡으셨다. 식욕이 없으시다 해서 혼자 김밥 한 줄을 먹었다.

  예배가 시작되었고 광희문교회 유창진 목사님이 베드로전서 5장 1~4절 말씀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셨다.

  말씀의 요지는 좋은 장로가 있고 나쁜 장로가 있는데 좋은 장로가 되라는 말씀으로, 겸손할 것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할 것과, (군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 “조교 앞으로!”하여 조교에게 시범을 보이게 하는 것처럼) 본이 되라는 말씀을 주셨다.

  “장로 되기 싫습니다.” 거부하던 마음 때문에 “자원함으로” “기꺼이”하라는 말씀에 가슴이 덜컥 찔려왔다. 게다가 “양 무리를 치되”라는 말씀에서 “아, 장로란 양 무리를 치는 사람이구나.” 더욱 송구한 마음이 되었다. 아직도 기독교내 소수에 해당하는, 어쩌면 이단으로 공격받을 소지가 다분한 나의 믿음에 대해 생각하면 “내가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인가” 두려울 따름이다.

  과정을 맡으신 목사님들의 사정에 의해 시간표가 바뀌어 진행되었다. 1,2교시는 채재관 목사님의 감리교회사 시간이었다. 채목사님은 최종진장로님의 가까운 후배로서 임권사님과는 30년만에 만난다 하셨는데, 임권사님은 시간표가 바뀌어 아는 분 같은데 자신이 없었던 상태였고, 채목사님은 바로 알아보시고 인사를 하셨다. 은평구에서 오래 목회하시다가 반석교회로 오셔서 2년째 담임을 하셨다는데 은평구의 어느 교회였는지는 듣고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감리교회사는 초기 선교의 과정을 중심으로 말씀해주시고 곧바로 시험까지 치렀다. 말씀의 내용은 감리교회의 출발이 천주교와는 달리 처음부터 복음과 민족의식을 가지고 시작했다는 것이었는데, 충군과 충효의 가르침을 가지고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중학교 때 기독교 100주년사를 읽었던 때문에 어려운 내용은 없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오늘날 초기선교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의료사업, 감리교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의료사업을 전개할 수 있기를 꿈꾸는 말씀과 미래산업의 정판술 집사가 카이스트에 300억을 희사한 사연, 고마태오 신부님의 몽블랑에서의 체험 등을 통해 “오늘날의 교회가 깜깜한 밤 찾아갈 수 있는 등불과 같은 교회가 되기를”, “상이용사 목견처럼 충성스런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가장 결정적인 말씀 “채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는 말씀들이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채무의식”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였다.

  3교시는 정동제일교회의 송기성 목사님의 설교학 시간이었다. 요령 있게 간단명료하게 핵심을 정리하여 전해주시는 말씀들이었는데, 숙제까지 주시며, 장로 된 자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더욱 나를 두렵고 떨리게 만든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설교가 나의 본업인 수업과도 맥이 통하는 것이어서 가슴에 찔리는 말씀들이 많았다.

  숙제로 주신 말씀은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20).” 입장을 바꾸어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잘 들어야 한다는 말씀도 강조해주셨지만, 나는 수업을 통해 무엇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했는지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다.

  설교란 성경에 근거한 이야기(Talk Based on the Bible)이다. 설교자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한다. 설교는 텍스트의 과거시제를 현재 텍스트로 만들어야 한다.(‘그때’(then) 혹은 ‘그 옛날’(once upon a time)로부터 ‘현재’(now)에 처한 청중들에게 복음을 만나게 해주는 것.) 설교는 행동을 낳는 것이다. 등등.

  교재에 잘 정리된 신학자들의 설교에 대한 정의가 교육에 대한 정의와 비교 되면서 가슴을 파고들었다. 장로 된 자는 ‘양 무리를 치는 사람’, 때로는 설교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몹시도 두렵고 떨렸다. 내가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시험에 나올 것이라며 현대설교의 네 가지 목적{구원(선포), 가르침(교훈), 개인치료(치유), 사회치료(예언)}을 외워두라고 하셨다.

  이어서 설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교 없이는 구원도 없다”는 칼빈의 말씀, “목회성공의 95%는 설교에 있다”는 스펄젼 목사의 말씀을 전하시는데,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는 나의 신념과 함께 “태초에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 예수”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설교자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들을 필요 없어”라는 말보다, “들을 만해”라는 말보다, “들어야 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설교자가 되어야 하고, “설교에서 최대의 문제는 설교의 준비가 아니라 설교자의 준비”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무디 목사는 설교를 준비하는데 48년이 걸렸다고 말했단다. 다시 한 번 나는 과연 자격 있는 사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힘이 되는 교재 속의 말씀은 “설교자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시자가 아니고 다만 옛 것을 나누어 주는 분배자일 뿐”이라는 것. 이 말씀을 읽으며 서울여대 장경철 목사님의 “사랑의 유통업자”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송목사님은 설교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다시 한 번 청중의 바른 자세를 강조하시고 목사님들의 설교를 아멘으로 들을 줄 아는 장로가 되기를 부탁하셨고, 고린도후서 1장 20절 말씀(“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을 숙제로 외우라 하셨다. 언제나 생각이 많아서 ‘아멘’으로 화답할 시기를 놓치는 나에게는 어려운 숙제였다. 바울사도의 이 가르침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씀인지 집에 와서 다시 공부하였다.

  언제나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 내 생각으로 믿어지지 않으면 “믿습니다.” 고백할 수 없는 인간. 하나님을 믿느냐 마느냐 하는 바로 그 선택이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라고, 이를 양보할 수 없다고 믿는 나의 신념이 기독교의 교리에 배치된 생각은 아닌가, 늘 남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주여 제 마음에 평화를 주소서! “너를 사랑한다!”는 주님의 고백에 늘 감사합니다.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