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명 : Hibiscus syriacus Linn.
- 한글 : 무궁화(끝없이 피고 진다는 뜻, 세종 25년 훈민정음 창제되면서 불려짐)
- 한자 : 無窮花
- 한명(중국) : 木槿, 舜花, 舜英, 薰華草, 朝開暮落花 等
- 영명 : Rose of Sharon, Shrub Althea, Rose Mallow, Syrian Hibiscus
무궁화의 명칭에 얽힌 유래
-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 L. 이다. 여기서 Hibiscus라는 속(屬)명의 어원은 Hibis(고대 이집트의 아름다운신) + isco(유사하다)라는 뜻으로 즉 아름다운 신을 닮았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종(種)명인 syriacus는 원산지가 중동의 "시리아"라는 뜻인데 시리아에는 무궁화가 없기 때문에 명명자가 잘못 붙였다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이다.
- 또한 영명의 Rose of Sharon에서 "샤론"이란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땅을 일컫는 말로 "신에게 바치고 싶은 꽃" 또는 "성스러운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으로 대단히 아름다움을 뜻하며, Shrub Althea는 Althea가 그리스말로 '치료하다'라는 뜻이므로 약용으로 쓰이는 관목이라고 할 수 있다.
- 한명(漢名)의舜花, 舜英도 미모의 여인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로 대단히 아름답다는 뜻이다.
- 이와같이 매우 아름다운 꽃으로 표기되고 그 종류도 대단히 많기 때문에 학명의 변천도 다양했을 뿐아니라 분포지역 및 꽃색깔과 모양에 따라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명의 변천은 1924년에야 통일이 되었는데,
- 유럽에서는 한때 무궁화의 학명이 분포지역 꽃색깔 및 모양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부르기도 하였다. 아네모네와 같은 꽃이라하여 Hibiscus anemoneflorus, 두가지 색깔을 뜻하는 Hibiscus bicolor, 순결을 뜻하는 Hibiscus coelestis, 우아함을 뜻하는 Hibiscus elegantissimus, 순결하게 희다는 뜻의 Hibiscus leopoldii, 함박꽃과 같다는 뜻의Hibiscus paeoniflorus, 빨강꽃이라는 뜻의 Hibiscus palustris, 분홍꽃이라는 뜻의 Hibiscus purpurens, 흰꽃이라는 뜻의 Hibiscus albus와 같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왔었으나 모든 것들이 Hibiscus syriacus와 동일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품종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 또한 한문명으로의 표기에 있어서도 고래로부터 다양하게 불리워져 내려왔다. 무궁화에 관한 명칭은 無窮花와 木槿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문헌상에 나타난 별칭을 모아보면 無窮華, 無官花, 舞官花, 無宮花, 無宿花, 薰華草, 槿花草, 菫華草, 舜花, 舜英, 木槿, 槿, 朝槿, 朝花, 朝華, 朝蕣, 朝生, 朝菌, 朝椿, 王薰, 朝生暮落, 神樹, 御賜花, 一日花, 白槿, 權黃華 등과 같이 대단히 많다.
- 몇가지 표현의 내용을 살펴보면 끝없이 피고 진다는 뜻의 無窮花, 아름다움을 뜻하는 蕣華, 蕣英, 蕣榮, 개화기간이 짧다는 의미의 日華, 日及, 日蕣, 日槿, 朝開暮落花, 朝生暮落花, 朝榮暮落, 朝槿, 朝花, 朝華, 朝蕣, 朝生, 朝菌 등, 울타리에 활용한다 해서 藩籬草 등 대단히 다양하게 표현되어 왔다. 이것은 무궁화의 꽃이 얼마나 다양하고 탐스러운가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국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가을이 다가올 즈음이면 삼천리 방방곡곡에 피어나는 무궁화. 끈질기며 번식력이 강한 무궁화는 우리 겨레의 얼이 담긴 나라꽃(國花) 입니다. 많고 많은 꽃 중에서도 특별히 무궁화가 우리의 나라꽃으로 정해진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무궁화가 수많은 각국의 나라꽃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궁화가 갖는 또 다른 생명력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무궁화가 왜 우리의 나라꽃으로 선택되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궁화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며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고 번식해 나갑니다. 이러한 완강한 자생력이, 우연히 우리 민족의 기나긴 역사 속에 괴어 있는 맥과 얼에 연결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인간들이 자신의 역정과 이상을 되새기며 그에 알맞은 꽃을 선택하여 한 나라의 표상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무궁화는 그런 조건에 적합했던 것입니다. 물론 나라마다 나라꽃을 정하는 기준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그 나라의 기후나 지질, 역사, 문화 등과 관련이 깊은 식물이 나라꽃으로 정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의 나라꽃 무궁화(無窮花)는 1000년이 훨씬 넘는 오랜 동안 우리 민족의 얼과 혼 그 자체였습니다. 무궁화에 관한 오랜 기록은 동진(東晋)의 곽복이란 사람이 쓴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산해경]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군자의 나라란 우리나라를 뜻합니다. 또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도 '군자의 나라의 지방은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기록에 의하면, 이미 1400여년 전에 우리나라 전역에 무궁화가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궁화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약 100일동안 크고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낱개의 꽃은 이른 새벽에 피고 저녁에 지기 때문에 날마다 신선함을 느끼게 합니다. 며칠이 지나면 먼저 핀 꽃은 떨어지고 새로운 꽃이 그 뒤를 이어 피어납니다. 이처럼 꽃과 꽃이 끝없이 이어 피는 꽃이란 뜻에서 무궁화라고 합니다. 무궁화가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꽃의 강건함과 순수한 아름다움 때문일 것입니다. '유여동차언여무화'라는 시(詩)가 있습니다. '여인과 함께 수레를 탔는데, 그 여인의 얼굴이 무궁화같았다'는 뜻입니다. 또 학명의 '히비스커스(hibiscus)'는 이집트의 히비스 신처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무궁화의 영어명은 '로즈 오브 샤론(rose of sharon)'으로 통합니다. 샤론은 가나안의 복지(福地)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을 말하는데, 무궁화는 가장 복받은 땅인 샤론에 핀 장미라고 생각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찬사에 비해, 어떤 선인은 아침에 화사하게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를 보고, '可燐榮落在朝昏'이라 하였습니다. '이른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짐이 가련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면에서 무궁화라는 꽃의 영락은 그 생태와 함께 인간 삶의 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깊은 뜻을 갖춘 강한 생명의 꽃인 것입니다.
- 무궁화는 태고 단군조선이 세워지기 이전인 신시시대(神市時代) 환나라(桓國)의 나라꽃인 '환화(桓花)'로 나타나 오늘날까지 오천여년 동안을 배달겨레와 동고동락을 하며 자연스럽게 겨레의 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먼저 우리나라에 대한 한자 명칭을 국내외의 옛 문헌을 통하여 수집한 권상로(權相老 1879~1965)의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 "국명의 이칭(異稱)"에 의하면 그 수가 무려 194가지나 된다고 한다.
- 이들을 크게 구분해보면 근방(槿邦), 근역(槿域), 근화향(槿花鄕), 근원(槿原) 등의 명칭은 무궁화를 뜻하는 근(槿)자가 들어있어 "무궁화의 나라"를 의미하고 단국(檀國), 단기지방(檀箕之邦), 신단(神檀), 진단(震檀), 단방(檀邦) 등은 단군과 관계되는 명칭이며 대동(大東), 동구(東區), 동방(東邦), 일역(日域), 일방(日邦) 일출허(日出墟) 등의 명칭은 "동방의 해뜨는 나라"의 의미로 가장 종류가 많았고, 군자국(君子國), 예의지방(禮義之邦), 선인국(仙人國) 등의 명칭은 예의 있는 나라임을 뜻하고 있다.
- 역사적으로 문헌상의 기록 또는 관련된 사건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 신시시대에는 무궁화를 환화(桓花)라하여 환국(桓國)의 꽃으로 불려졌으나 단군조선시대에는 환화(桓花), 근수(槿樹), 훈화(薰花), 천지화(天地花)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내고 있었는데 "단기고사"에 "16년(제5대 단군 丘乙 16년은 기원전 2090년 즉 지금으로부터 4088년)에 임금께서 고력산(古歷山)에 행차하여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주변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 (十六年帝行幸古歷山築祭天壇多樹周邊以槿樹)"라고 적고 있으며 또한 "단군세기(檀君世紀)"에 "16년 정축에 친히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쌓고 환화(桓花)를 많이 심었다(丁丑十六年親幸藏唐京封築三神壇多植桓花)"라고 제5대 단군 구을(丘乙)에 대한 사실(史實)을 적고 있었다.
- 한편 동양의 역사. 지리. 민속. 종교 등을 총망라하여 기록한 대표적인 기서(奇書)인 산해경(山海經)은 요순(堯舜)의 禹임금(BC 2183~2175 : 우리나라 단군조선시대)때 백익(伯益)이 저작하였는데 이 책의 제9권 "海外東經"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그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 짐승을 잡아먹고 두 마리의 큰 호랑이를 부린다. 그 나라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 그 땅에는 훈화초(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君子國在其北 衣冠衣冠帶劒 食獸 使二大虎在旁其人好 讓不爭 有薰(或作菫)華草 朝生夕死)"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 신라시대에는 "최문창 후문집(崔文昌候文集)권1표 가운데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신라의 효공왕 원년(897년)에 최치원이 임금의 명을 받아 당나라의 광종에게 쓴 국서가운데 " 무궁화 나라(신라를 일컬음)는 염양한데 점점 쇠약해 가지만 고시국(발해)은 강포한데도 더욱 강성해 가고 있다(槿花鄕廉讓自沈?矢國毒痛愈盛)"라고 스스로 근화향(무궁화 나라)이라 하였으며
- 고려시대에는 고종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이규보(1168~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권 14의 고율시(古律詩) 가운데 장노 문공과 동고자(東皐子) 박환고가 각기 근화(槿花)의 이름을 두고 논하는데 한사람은 "무궁화는 곧 무궁(無窮)의 뜻이니 꽃이 끝없이 피고짐을 뜻함"이라 하였고 또 한 사람은 "무궁은 곧 무궁(無宮)이니 옛날 어떤 임금이 이 꽃을 사랑하여 온 궁중(六宮)이 무색해졌다는 것을 뜻함"이라 하였다. 이처럼 각자가 자기의 의견만을 고집하므로 끝내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래서 백낙천(白樂天)의 시운을 취하여 각기 한편씩을 짓고 또 이규보에게도 화답하기를 권하였다(長老文公東皐子朴還古各論槿花名或云無窮無窮之意謂此花開落無窮或云無宮無宮之意謂昔君王愛此花而六宮無色各執不決因探樂天詩取其韻各賦一篇亦勸予和之)라는 기록은 중국문헌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무궁화(無窮花)"라는 명칭이 최초로 나타났다.
- 이조시대에는 세종 25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무궁화"라는 한글명칭이 쓰이게 되었으며 실학자들의 실학서적에 무궁화에 대한 많은 기록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세종때의 강희안(姜希顔)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무궁화 애호가였던 안사형(安士亨)이 항의한 글을 보면 "목근(木槿)은 본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화목인데 형은 그것을 화보에도 수록하지 않았고 또 화평(花評)에서도 논하지 않았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는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단군께서 나라를 여실 때에 이미 목근화가 나왔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은 동방을 반드시 근역(槿域)이라고 말하였으니 근화는 예로부터 ---"라고하였으며, 최세진은 사성통해(四聲通解)상권에서 "근은 츤이다. 목근화를 무궁화라고 부른다(槿, ?也 , 今俗呼木槿花, 無窮花")하였고 기타 최세진의 "훈몽자회" 허준의 "동의보감", 홍만선의 "산림경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익의 "성호사설", "만물보", "譯語類解" 등 여러 문헌상에 기록하고 있다.
- 또한 어사화(御賜花), 진찬화(進饌花) 등 궁중행사에도 사용해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 또한 그간에 있었던 박해사건들을 살펴보면
- 동아일보는 1923년부터 10년에 걸쳐 '비 개인 아침에 새로 단장한 무궁화' "무궁화는 잘도 핀다.' '무궁화는 제철 만나' '날마다 새 꽃 피우는 무궁화' ' 철 지난 무궁화' 등 무궁화에 관련된 사진과 설명을 개재하여 무언의 은밀한 저항을 표시하고, 1930년 1월1일에는 "동아일보" 제호의 바탕을 한반도지도와 무궁화로 매운 도안을 사용하여 오다가 1938년에 무궁화의 도안이 검열에 걸려 1938년 2월9일부터는 삭제되었다가 1945년 광복후 환원되었으며
- 1937년에는 조선 소년군 항건(項巾)에 새겨진 무궁화 화환이 문제가 되어 압수당하였고, 중앙학교의 교가에 "흰 뫼와 한 가람은 무궁화 복판" 이라는 구절이 있고 모표(帽標)도 무궁화 화환이 "中"자를 받치고 있던 것이 단속에 걸려 1938년 교가는 금지되고 모표(帽標)는 압수당하였다.
- 민족사상의 보급에 앞장서온 한서 남궁억은 1931년에 "무궁화 동산"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무궁화를 보급하여 오던 중 1933년 11월 2일 시조사원(時兆社員)을 가칭한 홍천 경찰서 사법주임인 신현규에게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라는 설명과 함께 사쿠라(벚나무)는 활짝 피었다가 곧 지지만 무궁화는 면연(綿延)히 피어나는 것처럼 한국의 역사가 면연할 것이라고 역설한 것이 화근이 되어 70,000주에 이르는 무궁화가 불에 태워졌고 선생은 붙잡혀가 옥고(獄苦)를 치루게 된 남궁억의 "무궁화 동산"사건(십자가당 사건)이 있었다. 그외 근화여학교의 교복사건, 오산학교의 무궁화동산, 대구사범의 무궁화 동산사건 등 많은 시련을 격어 왔다.
- 이러한 시련속에서 우리겨레와 연을 맺어왔지만 나라꽃으로 자리를 잡게 된 배경에 대하여는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가운데 "배재 80년사"에 나타난
-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의 정초식에서 불렀던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시원(始原)으로 하여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동시에 애국가가 국가(國歌)로 채택되면서 자연스럽게 무궁화가 국화(國花)로 자리잡게 되고 따라서 국기봉, 나라문장(國章), 대통령 표장(標章) 등 국가 상징물과 국가 기관의 기(旗), 훈장, 상장, 각종 뺏지 등에 활용하게 되므로서 모든 국민이 인정하는 명실공히 나라꽃으로 정해진 것이다.
재 배 번식은 주로 꺾꽂이·접붙이기 등 영양번식에 의한다. 종자도 많이 채취할 수 있고, 발아도 용이하지만 자가불화합성 식물인 관계로 육종을 목적으로 하는 이외에는 실생으로서는 기대하는 꽃이 피지 않는다. 양수(陽樹)인 까닭에 일조(日照)가 많은 양지바른 곳에 심는다. 너무 습하거나 건조한 땅은 적당하지 않다. 꺾꽂이의 발근율과 접붙이기의 활착률이 매우 높다. 종자를 뿌려서 2년 정도 가꾼 다음 목적하는 품종의 눈접[芽]을 하면 단시일에 대량 번식할 수 있다. 씨뿌림은 가을에 받아서 바로 뿌리거나 또는 저장했다가 다음해 봄에 뿌린다. 비배관리는 일반 정원수의 경우와 같은 방법에 따른다. 가지가 많이 나오므로 솎아주고, 봄에는 새가지를 적당히 발생시켜서 좋은 꽃이 피도록 한다. 약 100일 동안 많은 꽃이 계속해서 피므로 넉넉한 광선을 필요로 한다. 현대적 시설을 갖추어서 광선·온도·습도를 적절히 맞추어 주면 온실 안에서 오랫동안 꽃이 핀다. 무궁화는 대개 생울타리나 정원수로만 재배해 왔으나 분가꾸기도 쉽고 또 적당한 품종도 적지 않다.
병 충 해 무궁화는 병충해가 적으므로 재배하기 쉽지만 입고병(立枯病)·진딧물·박쥐나방 등 몇 가지가 두드러진다. ① 입고병:나무줄기의 아랫부분에서 발생하여 수분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므로 나무 전체가 말라 죽는다. 토양온도 15∼21 ℃에서 토양에 물이 빠지지 않을 경우에 발생하기 쉽다. 병원균은 펠리쿨라리아 필라멘토사(Pellicularia filamentosa)와 펠리쿨라리아 롤프시(P.rolfssi)의 2종이며 기주식물(寄主植物)은 알려진 것만도 160종이 넘는다. 구제방법은 발병 초기에 곧 뽑아서 태워버리거나 캡탄 500배액을 살포한다. 근본적인 대책은 배수를 좋게 하고 나무를 건강하게 가꾸도록 한다. ② 진딧물:가장 대표적인 해충이며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보기에 아주 지저분하다. 새싹이 나올 때에 가장 번성하고 점점 줄어들어서 6월 하순에는 거의 다 없어진다. 진딧물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무궁화에 붙는 것은 목화진딧물(Aphis gossypii)로 각종 식물에 해를 끼친다. 또한 바이러스병원균의 매개체로서 피해가 가장 크다. 방제법은 싹트기 전후 2∼3차례 디프테렉스나 메타시스톡스 1,000배액을 고루 뿌려 주면 거의 다 소멸된다. 토양 침투성 살충제 테믹(Temik)15입제를 뿌리 주위에 10 cm 깊이로 비료 주듯이 뿌리고 묻어 주면 50∼70일 동안 진딧물을 방제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③ 박쥐나방:가장 피해가 큰 해충이다. 나무줄기의 속을 파먹으므로 나무가 말라 죽기도 하고 파먹은 부분에서 부러지기도 한다. 파고 들어간 구멍에서 반드시 똥이 나오므로 철사를 구멍으로 쑤셔 넣어 유충을 죽이거나 또는 침투성 약제를 뿌려서 구제한다.
이 용 수피에서 섬유를 얻어 제지원료로 쓴다. 한방에서는 4~6월에 수피 또는 근피를 벗겨 햇빛에 말린 것을 근피(槿皮)라 하며 해열·해독·소종(消腫)의 약효가 있어 기관지염·인두염·장염·이질·탈항(脫肛)·치질·대하(帶下)·옴 등의 치료에 달여서 복용하게 하였다. 동의보감에는 사혈(瀉血)을 멎게 하고, 설사 후의 갈증이 심할 때 달여 마신다고 하였다. 어린 잎을 나물로 하고 차로 대용하기도 한다.
풍속과·상징 혼례 때 입는 활옷[闊衣]에 무궁화를 수놓는 것은 무궁화의 다산성에 유감(類感)한 습속이다. 무궁화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지는 하루살이 세속의 행복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나무 전체로는 끊임없이 피고지는 무궁한 영화의 나무로서 나라의 꽃으로 삼은 한국인의 종교적인 심성이 깃들어져 있다. 대표품종인 백단심(白丹心)은 꽃이 백색이어서 무구청정(無垢淸淨)을 나타내고 진홍빛 화심(花心)은 겨레의 얼을 상징한다. 옛 당나라의 어느 여왕이 꿈에서 동지섣달에 꽃이 피라고 기원하여 다른 꽃은 모두 피었는데 무궁화만은 피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한국민족이 당에 굴복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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