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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결정의 10가지 오류(이재화변호사 글)(민중의 소리에서 옮김)

DoDuck 2014. 12. 23. 12:40

348쪽의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판결문이 아니라 엉성한 상상에 기초한 한 편의 ‘삼류 공안소설’이다. 증거가 아닌 ‘독심술’로 사실을 인정하고, 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비약된 논리로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정문의 대표적 오류 10 가지만 짚어보자.

공개정당에 숨은 목적이 있다는 것은 형용모순

첫째, 헌법재판소는 15년간 지속되어온 대중정당의 목적을 당의 강령에서 찾지 않고 ‘주요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있다’고 판단했다. 강령에 목적을 공개하고 그 목적대로 활동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는 공개적 대중정당에 무슨 숨은 목적이 있다는 것인가. 대중정당에 숨은 목적이 있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해산 결정된 독일의 사회주의 제국당은 나치즘을, 독일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터키의 복지당은 신정정치를 각각 목적으로 표방하고 이를 당 강령에 공개적으로 명시했다.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다수의견)은 공개정당을 마치 ‘사기집단’으로 취급하고, 그 정당을 지지하는 당원과 국민을 거짓 목적에 속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헌법재판소가 이처럼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역설적으로 통합진보당의 강령에서 내세운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주의, 민중중심의 자립경제, 연방제통일 등에 아무런 위헌성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는 ‘퍼즐 맞추기’로 짜깁기한 ‘가공품’

둘째,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은 ‘퍼즐 맞추기’를 통해 ‘숨은 목적’을 찾아내야 한다고 논리를 전개했다. 헌법재판소는 일부 구성원들이 과거 민혁당, 일심회 등의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된 전력, 이들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 입당하기 전에 발표한 글과 발언, 주사파 활동을 하다가 전향한 김영환 등 몇몇 증인들이 과거의 형사재판에서 한 증언을 뒤집은 증언,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 당시 당의 구성원 중 일부가 발표한 발제문,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기 전에 전국연합조직 중 경기동부연합 등 지역조직에서 활동한 사실, 2008년 제1차 분당 당시 탈당한 일부 인사가 자신의 탈당 명분을 찾기 위해 날선 언어로 남아 있는 당원들을 ‘종북주의자’라고 비난한 언론보도 등을 ‘퍼즐 조각’로 삼아 ‘당의 주도세력의 목적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퍼즐 맞추기를 완성해냈다.

이러한 퍼즐 맞추기는 ‘증명되어야 할 것이 참’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선후가 전도된 논리다. 이미 통합진보당의 은폐된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는 퍼즐을 맞출 수 없다. 법정의견은 정부측이 요구한 ‘퍼즐 맞추기를 통해 숨은 목적을 찾아 달라’는 주문을 그대로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구미에 맞는 ‘퍼즐 조각’을 찾아내어 자신들이 가공한 후, 가공된 그 퍼즐 조각을 짜깁기해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라는 ‘숨은 목적’을 그려냈다. 그들이 찾아낸 ‘숨은 목적’은 ‘원석’이 아니라 8명의 재판관이 가공한 ‘가공품’인 것이다.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결정문에서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이를 통하여 형성된 정책노선은 평면적인 하나의 퍼즐판과 같이 물리적으로 분해해 낼 수 있는 조각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정의견에 다음과 같이 문제 제기를 했다.

“피청구인에게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한다면, 피청구인 구성원 사이에서 공유하고 있음이 명백한 비밀강령의 존재를 알아내거나, 피청구인의 드러난 목적, 즉 강령상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감추기 위한 위장막에 불과하다고 볼 설득력 있고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만약 그러한 증거를 ‘퍼즐 조각’에 비유하고자 한다면, 그 ‘퍼즐 조각’은 그 형태가 달리 가공되지 않은, 본래 그대로의, 단단한 것이어야 함은 명백하다. 은폐된 목적을 찾고자 하는 해석자의 주관에 의하여 깎이고 다듬어진 것이어서는 아니된다는 의미이다.”

정체가 불명확하고, 아무런 논증도 없는 ‘주도세력’의 논리

셋째,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은 누가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인지를 확정하고, 그들의 이념적 지향점을 밝힌 다음 그들이 인식하는 진보적 민주주의 의미를 추론해냈다. 그런데 이 추론의 출발점인 ‘주도세력’이라는 개념은 너무 자의적이다. 법정의견은 무엇을 주도한다는 의미인지 밝히지 않고 막연히 주도세력이라고만 언급했다. 당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세력이라는 의미라면 이들이 당의 의사결정기관인 최고위원회, 대의원회, 중앙위원회에 실제로 주도하였는지, 어떤 경로로 주도하였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이를 밝히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가 제출한 각종 회의록에 의하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사결정기관은 특정한 인물이나 특정한 세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이에 대한 아무런 논증 없이 막연히 주도세력이라고 단정했다.

법정의견은 민혁당 또는 민혁당이 지도하는 조직의 조직원이었던 사람들이 장악한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의 주요 구성원 및 이들과 이념적 지향점을 같이하는 당원들을 주도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민혁당 관련자로 처벌된 자는 이석기 의원뿐이고 결정문에서 언급한 이상규, 김미희 의원 등은 민혁당 사건으로 수사조차 받지 않은 사람이다. 결정문에 언급된 사람들은 전향한 김영환이 1999년 법정에서 자신이 증언한 내용을 15년 후 헌법재판소에서 뒤집은 신빙성 없는 증언에 기초한 것이다. 법정의견은 민혁당이 어떻게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했는지 아무런 논증을 하지 않았다. 경기동부연합은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기 전에 그 지역에 있는 각종 사회단체의 연합조직이고 이 조직에 소속된 자들은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입당 후 경기동부연합은 별도의 조직을 만들지 않았다.

법정의견은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후 별도의 조직을 갖고 있었는지, 조직의 목적은 무엇이고 주요 구성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념적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단지 보수언론의 ‘찌라시’ 수준의 신문보도를 통해 얻은 ‘편견’만으로 경기동부연합 등이 당의 주도세력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이것은 증거재판이 아닌 ‘관심법 재판’이다.

반헌법적 독심술 추론한 주도세력의 이념적 성향 분석

넷째, 법정의견은 주도세력의 이념적 성향을 10여 년도 더 지난 국가보안법위반 형사판결이나, 1999년 이후 그들과 직접적 접촉을 하지 아니한 김영환 등 전향한 인사들의 증언에 기초하여 그들의 과거 및 현재의 사상과 신념을 판단했다. 이른바 ‘주도세력’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 활동하면서 ‘북한을 찬양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일부 구성원이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에 주체사상을 학습했다는 판결문만 존재한다.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사상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음이 드러난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사람의 생각은 변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식의 전환이 있을 수 있다’는 경험칙을 무시하고 단 하나의 증거도 제시함이 없이 ‘과거 한때 주체사상을 신봉한 자들은 전향하지 않은 한 생각이 변할 수 없다’고 단정해 버렸다. 헌법의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시무시한 ‘독심술’이다. 헌법을 존중해야 할 헌법재판관이 반헌법적 발상을 한 것이다.

김이수 재판관은 결정문에서 법정의견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과거 지니고 있는 사상이나 신념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경우에만 그 변화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고, 전향하지 않으면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추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보려면 납득할 만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중세의 ‘심증재판’이자 ‘마녀사냥’

다섯째, 법정의견은 이석기 의원과 김홍열 등 내란음모사건으로 기소된 7명의 발언 등에서 찾아낸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이고, 이러한 목적이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목적이고, 나아가 통합진보당의 ‘숨은 목적’이라고 단정했다. 이석기 의원의 2013년 5월 12일 마리스타 수사회에서의 발언과 그의 신념이 그 회합에 참석하여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아니한 130명의 신념과 지향점이라고 단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 회합을 주도한 자들이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고 하여 경기동부연합이 이석기의 견해의 지향점을 공유한 자라는 증거도 없다.

이석기 등이 통합진보당의 당대표, 최고위원, 중앙위원회의 의사결정을 주도하였다는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이석기 등 회합에 참여한 주요인물이 당의 주도세력이고, 그들의 지향점이 바로 당의 목적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이것은 ‘현대의 증거재판’이 아니라 ‘중세의 심증재판’이다. 이것은 ‘판결문’이 아니라 ‘마녀사냥을 위한 성명서’에 불과하다.

편협한 반공논리와 파시즘적 사고로 엮어낸 ‘북한 추종성’

여섯째, 법정의견은 주도세력이 북한을 추종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였다고 단정했다. 북핵 문제에 관한 이용대의 발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에 관한 이정희 대표의 발언, 구성원 일부가 북한 인권 문제와 3대 세습 문제에 대해 침묵한 사실, 민주노동당에서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제명이 부결된 사실,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정부를 비난하고 피고인들을 옹호한 사실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법정의견은 이용대의 ‘북한이 핵개발에 이르게 된 이유는 자위권적인 행사의 측면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용대의 이러한 발언은 미국의 대북접근 프로세스에 관한 1999년 ‘페리 보고서’에도 기술되어 있는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전 주한미국 대사 도널드 그레그, 정세현, 이종석 통일부장관도 ‘방어적 성격의 억지력이고 자위적인 성격이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따라서 이용대의 ‘자위권 발언’을 근거로 주도세력이 북한을 추종한다고 단정한 것은 보편적 판단이 아닌 ‘편협한 반공논리’에 다름이 아니다.

법정의견이 문제 삼은 것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 관한 이정희 대표의 발언이다. 이정희 대표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2010. 8.경 언론 인터뷰에서 “북이 만약에 한 것이라면 그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화해와 협력의 방법으로 풀어야지 대결의 방법으로 풀 수는 없다”고 했고,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하여 2010. 11. 24. 트위터에 “연평도에서 군인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불길 속에서 두려움을 떨었습니다. 북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전행은 불행을 가져올 뿐입니다.”라고 의견을 표명했다. 이것이 어떻게 북한을 추종하고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법정의견은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정부와 같은 강도로 북한을 비난하지 않으면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8명의 재판관의 시각이야말로 헌법의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파시즘적 사고’라고 아니할 수 없다.

법정의견은 북한인권에 관한 문제와 3대 세습 문제에 대해 통합진보당이 북한을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어떤 당이 북한인권과 3대 세습에 대해 정부와 같은 강도 높게 비난해야 할 의무는 없다. 남과 북이 통일의 파트너라는 관점에서 전략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고, 이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지는 전적으로 정당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정의견은 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동조하는 것이라고 문제 삼은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관의 시각이 과연 헌법에 부합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법정의견은 민주노동당 시절 일심회 관련자에 대한 제명처리건에 관한 자주파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패배를 둘러싼 책임론이 제기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심회 관련자 제명 안건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다. 제명 안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 세력은 자주파가 아니라 평등파 내의 ‘다함께’ 의견그룹이었다. 대의원회에서는 2/3가 제명안에 반대했다.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하는 민주노동당이 국가보안법 위반을 하였다고 하여 당원을 제명시킬 수 없다는 정서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의 부결이 ‘자주파의 북한 추종성의 발현’이라는 법정의견은 부결의 경위에 관한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북한 추종성의 결과라면 그 당시에 이를 문제 삼아 탈당하였다가 이후 다시 합당하면서 당원들에게 “지난 분당 과정에서 저의 날선 언어로 마음의 상처를 받으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라고 사과한 조승수 전 의원의 행동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조승수 전 의원이 2008년 분당 당시에 진정으로 ‘제명안이 부결된 것은 종북주의자’라고 생각하였다면 2011년 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법정의견은 조승수 전 의원이 분당 당시에 발언한 것만 강조하고 다시 합당하면서 사과한 것을 무시했다. 사실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았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정의견은 통합진보당이 내란 관련 사건에 대하여 검사의 기소를 비판하고 정부를 비판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이 사건 모임의 실제는 내란음모가 아님에도 이러한 혐의로 기소한 당국의 태도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실제로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문제가 된 시점에 내란 관련 수사가 시작된 점, 국정원이 이례적으로 재판 전에 검증되지 않은 녹취록을 공개한 점, 공개된 녹취록에 상당 부분 오류가 있었다는 점, 이석기 등이 통합진보당의 당원인 점 등으로 볼 때, 통합진보당이 이에 대해 총력투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마치 이석기 등이 이 사건 모임에서 한 발언을 통합진보당이 옹호하거나 승인한 것으로 본 법정의견이야말로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 아닌가.

증거를 왜곡하여 만든 숨은 목적,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

일곱 번째, 법정의견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에 도입한 세력이 자주파이기 때문에 강령상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강령개정에 관여한 박경순이 당직을 맡기 전인 1997년 당시 토론회에서 한국사회를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혁명전략이론에 따라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단정했다.

이와 같은 법정의견은 사실에 기초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2003년부터 당내에서 집권을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가치 계승’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줄기차게 제기되었고,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7년 동안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2011년 6월 이 문구를 강령에서 삭제하고 그 대신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이 강령개정 당시 강령개정에 반대한 세력은 ‘사회주의적 이상과 가치 계승’을 삭제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적극 반대했던 것이지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강령개정은 특정 세력의 몇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의원대회에서 치열한 토론과 표결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정부가 낸 수백 개의 증거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그럼에도 법정의견은 이러한 증거를 외면하고 일부 인사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에 도입한 것으로 왜곡했다. 민주노동당의 당원과 대의원을 특정한 인사의 명령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민주노동당 창당부터 통합진보당에 이르기까지 당내에서는 혁명의 방법론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고, 한국사회를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로 본 적이 없으며,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을 채택한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마치 통합진보당이 북한과 같이 대한민국을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로 보고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을 채택한 것처럼 단정했다. 그 근거로 박경순이 앞서 말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제시했다. 그러나 토론회 당시 박경순은 입당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였고, 어떤 당직을 맡고 있지 않은 평당원으로서 당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그의 주장이 당의 견해로 수용된 바가 없다. 따라서 박경순의 주장은 개인의 견해에 불과할 뿐 곧 민주노동당의 견해로 평가할 수 없음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박경순의 주장이 마치 민주노동당의 공식적 견해로 채택된 것처럼 판단했다. 이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대리인들이 수차례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8명의 재판관은 이를 무시하고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토론문을 증거로 끌어들인 것이다. 매우 악의적인 사실왜곡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는 ‘개별 당원의 행위가 개인적 차원의 행위일 때에는 정당해산심판의 대상이 되는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스스로 정한 기준에도 반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식민지반자본주의라고 분석한 문헌은 전혀 없다. 단지 ‘종속적 신자유주의 국가’로 규정했을 뿐이다. 한국사회를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본 이유는 ① 금융독점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체제, ② 반노동조합 입법 및 노동유연화 정책 실현, ③ 복지의 축소, ④ 금융시장의 탈규제화, ⑤ 공기업 민영화와 부자감세, ⑥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 ⑦ 자본시장 자유화와 외환시장 개방 등의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사회를 종속적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규정한 것은 통합진보당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학계에서 널리 분석하는 개념이다. 종속적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은 주권의 소재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에 따른 분석인 북한의 신식민지반자본주의와는 다른 분석틀이다. 즉, 한국사회를 식민지라고 보는 이상 혁명노선을 추구해야 하지만 식민지가 아닌 종속적인 사회로 본다면 선거를 통해 그러한 종속적인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의견은 종속적 신자유주의 사회라는 것과 식민지반자본주의라고 보는 것과의 질적 차이를 애써 외면해버렸다.

자주파가 장악한 후 달라진 강령 없는데, 강령이 갑자기 위헌?

여덟 번째, 법정의견은 종북 성향의 자주파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강령에 도입하였기 때문에 진보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이루는 자주적 민주정부, 민중주권주의, 민중중심의 자립경제 등은 결국 폭력혁명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자주적 민주정부, 민중주권주의, 민중중심의 자립경제 등은 진보적 민주주의가 도입된 민주노동당의 2011년 6월 개정에서 비로소 도입된 것이 아니라 2000년 창당강령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2011년 6월 강령에서는 단지 ‘사회주의적 요소’만 삭제하고 나머지 강령은 그대로 두었다. 법정의견대로라면 같은 강령인데 당의 주도세력이 바뀌었으니 그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강령이 ‘카멜레온’이라는 것인가. 이런 억지가 어디에 있는가.

자주적 민주정부가 위헌이라면 예속적 독재정부를 주장해야 한다는 말인가.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집권전략보고서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내지 민중주권주의가 실현된 사회의 대표적인 예가 남미의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정권’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정권은 선거를 통해 집권하였고 집권 후 자본가 계급에 대한 참정권을 박탈한 적이 없다. 무슨 근거로 진보적 민주주의와 민중주권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단정하는가. 법정의견은 이러한 통합진보당 대리인의 주장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합리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중중심의 자립경제가 위헌이라면 재벌중심의 예속경제가 합헌이라는 말인가. 소유구조의 다원화는 민주노동당 창당강령에도 있었던 내용이고 정의당 등 다른 진보정당 강령에도 있는 내용이다. 왜 통합진보당의 강령만 위헌이라는 말인가. 법정의견은 합헌이었다가 주도세력이 달라졌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인데, 왜 주도세력이 달라지면 성문화된 강령의 내용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연대체 구성이 사회주의의 전유물이라는 것인가?

아홉 번째, 법정의견은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은 집권과 사회변혁을 위해 상설연대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저항권과 선거투쟁을 올바르게 결합해서 집권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폭력혁명을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든 정치세력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집권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유사한 생각을 하는 세력 내지 집단과 연대를 한다. 새누리당이 사학법 투쟁을 할 때 보수단체와 연대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통합진보당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진보적인 단체와 연대체를 구축하였다고 하여 이를 ‘사회주의식 통일전선전술’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양식을 무시한 너무나 ‘천박한 논리’이다.

민주노동당이 ‘저항권과 선거투쟁을 적절히 결합해서 집권하겠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폭력혁명을 추구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나 단선적인 사고이다. 집권전략보고서에서 언급한 저항권은 대다수 헌법학자들이 인정하는 ‘예외적 상황에서의 저항권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집권보고서에는 ‘원칙적으로 선거를 통해 집권하며, 예외적으로 국민의 저항권 행사의 상황이 되면 예상보다 집권을 빨리 할 수 있다’고 기술되어 있을 뿐, 적극적으로 국민의 저항권을 부추겨서 집권하겠다는 내용이 없다. 저항권적 상황을 12․12쿠데타 등을 예로 들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에서 사용한 저항권은 폭력혁명을 통해 집권하겠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데 법정의견은 증거를 왜곡하여 마치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 전민항쟁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여 집권하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왜곡했다. 자신들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증거에 나오는 사실마저도 왜곡한 것이다. 참 나쁜 재판관들이다.

참새 잡기 위해 대포 쏘겠다는 것인가?

법정의견은 내란 관련 사건을 예로 들면서,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 북한에 동조하여 국가기간시설 파괴를 도모하는 등 대한민국의 존립에 위해를 가하는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까지 하였는데 이는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석기 등 내란음모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내란음모는 인정할 수 없고, 내란에 이를 구체적 위험성은 없으나 개연성이 있다’며 내란선동죄만 유죄로 인정했다. 즉, 구체적 위험성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란음모사건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였지만 총 한 자루, 죽창 하나 발견된 것이 없다. 이석기가 내란을 선동하였다는데 회합에 참석한 130명 중 아무도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위험성이 있다는 말인가.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전 의원 등의 회합을 사전에 안 것도 아니고, 사후에 승인한 것도 아니다. 이석기 전 의원의 ‘남북이 연합하여 미국에 맞서 싸우자’는 발언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 구축과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통합진보당의 기본노선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이석기 등의 개별적인 행위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고 하여 이를 통합진보당의 활동으로 보고, 이를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것은 너무 비약된 논리이다. 이석기 전 의원의 행위는 그에 대한 형사처벌로 그 위험성이 제거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것은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참새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는 꼴이다. 여러 모로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법정의견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사실을 짜깁기하고, 억지논리로 통합진보당이 위헌이라는 논리를 편 ‘기획된 결정’이다. 이 ‘의도적 오판’은 역사가 바로잡아줄 것이다. 1958년 조봉암 진보당 당수에 대한 판결이 2011년에 잘못된 판결로 밝혀졌듯이. 훗날 역사는 이 ‘역사적 오판’에 가담한 8명의 재판관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고, 그들의 ‘양심 없음’과 ‘비겁함’에 대해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