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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국측 ‘천안함 자료’ 공개 이끌어낸 안수명 박사 “끝까지 진실 밝힐 것”

DoDuck 2014. 10. 13. 12:47

[인터뷰] 미국측 ‘천안함 자료’ 공개 이끌어낸 안수명 박사 “끝까지 진실 밝힐 것”

민중의 소리www.vop.co.kr

 

30여년 어뢰·잠수함 기술 전문가 “어뢰는 브레이크가 없어요”

김원식 뉴욕 특파원 wskim@vop.co.kr 발행시간 2014-10-06 07:04:33 최종수정 2014-10-06 12:49:32     

 

편집자주-최근 미 해군은 2010년 3월 26일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방대한 자료를 공개했다. 여전히 천안함 사건은 남북관계는 물론 한반도정세에 그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 사건 직후 우리 정부가 북과의 교류협력을 사실상 전면 차단한 이른바 ‘5.24 조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의 정보자유법에 의거해 미 해군의 자료를 전달받은 재미 과학자 안수명 박사는 30여년 동안 잠수함과 어뢰 분야 기술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그는 천안함 사건 당시부터 5년여 동안 진실을 추적해왔다. 왜 그는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갖고 진실 규명에 뛰어들게 됐을까? 민중의소리 김원식 뉴욕 특파원이 지난 9월 28일(현지시각)샌디에이고에서 안 박사를 인터뷰했다.

 

또, 전화가 걸려왔다. 안 박사였다. “미스터 김!” “네, 안 박사님” 인사도 채 끝나기 전에 안 박사는 흥분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늘 드디어 CD(미 해군 문서, 안 박사가 3년 넘게 법적 투쟁으로 얻으려고 한 정보)가 왔어. 근데 허참, 이 나쁜 놈들(미 해군)도 천안함 최종보고서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어!”

평소에 차분하다가도 ‘천안함’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높아지는 안수명(71) 박사. 최근 1년 사이 어떤 때는 하루 열 차례 이상 통화할 정도로 잘 아는 사이지만,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만나기 위해 직항로가 없는 뉴욕에서 10시간, 하루 반에 걸쳐 비행기를 갈아타며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기다리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오래된 볼보 승용차가 다가왔다. 안 박사는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자동차 키를 나에게 주면서 운전을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운전을 하고 가다가 “아니 박사님 악수는 하셔야죠” 하면서 서로 인사도 하지 않은 것을 깨달으며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안수명 박사가 27년째 몰고 다니는 볼보 승용차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안수명 박사가 27년째 몰고 다니는 볼보 승용차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민중의소리

-박사님, 이거 얼마나 오래된 차입니까?
=27년 된 볼보지. 다 아날로그야. 그래도 아무 문제없어.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탈 거야.

정말 그랬다. 생산된 지 27년이 넘은 볼보는 새 차 못지않게 에어컨도 작동되면서 잘 달렸다.

-그런데 박사님, 미국에 50년 가까이 사시는 동안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한 번 밖에 끊지 않았다면서요? 사실인가요?
=내가 1965년 미국에 와서 1968년에 박사학위 시험 보러 갈 때 딱 한 번 딱지를 끊었지. 그 후론 한 번도 법을 위반하거나 법에 저촉된 행위를 한 적은 없어. 그런 나를 천안함 문제 제기한다고 남한과 미국 정부가 회사도 경영하지 못 하게 압력을 넣고 조국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 있는 거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안 박사의 저택에 도착했다. 집에는 최신형 벤츠 승용차도 있었지만, 큰 저택에 어울리지 않는 이 볼보가 어쩌면 골동품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박사님, 댁에 왠 수채화 그림이 이렇게 많지요?
=아 그거, 집사람이 그린 거야. 작년에는 미국 수채화 국전과 국제전에 입선도 했어.

차분한 모습으로 차를 내오는 안 박사의 부인인 백애자(70) 여사. 이 분이 과거 백두진 총리의 딸이라는 사실도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그냥 취미로 하는 거에요. 작년에 수채화전에 입선했지만, 주로 손자들을 그려주면 좋아해요” 두 사람은 1970년 처음 만나 결혼했으며, 1남 1녀를 낳아 이제는 다 출가시키고 손자 손녀를 둔 아주 평범한 은퇴 부부의 모습이었다.

안수명 박사 부부, 사진 뒤편 거실 벽에 부인 백애자 씨가 직접 그린 수채화가 걸려 있다.
안수명 박사 부부, 사진 뒤편 거실 벽에 부인 백애자 씨가 직접 그린 수채화가 걸려 있다.ⓒ민중의소리

그레그 전 대사의 기고를 보고 ‘천안함’에 뛰어들어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그냥 단도직입으로 해버렸다.

-박사님, 사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으신데, 왜 그 힘든 천안함 사건에 나서게 되셨습니까?
=돈 그레그(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뉴욕타임스에 글을 쓴 것이 계기가 되었지.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그 합조단 보고서를 봤는데, 완전 엉터리야. 엉터리도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그래서 그걸 밝히려고 한 것이고.

-무엇이 가장 엉터리였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아니 무슨 1번 어뢰라고 하는 것이 북한이 만들었다는데, 그것이 그 상황에서 천안함을 향해 발사되어 그 천안함 밑에서 정확하게 터졌다고? 누가 봐도 웃을 소리 아닌가! 북한이 그런 세계 초일류의 기술이 있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인데, 그 허접한 무슨 연어급 잠수함이 와서 듣도 보도 못한 1번 어뢰 딱 한 발을 쏴서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이 말이지.

-그런데 박사님, 한국 국방부 합동조사단에서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발사된 그 어뢰가 움직이는 천안함을 탐지했고 그 움직이는 천안함 6미터 아래에서 터져 버블제트로 천안함을 두 동강 냈다고요?
=바로 그게 문제에요. 자 어뢰는 세 가지를 동시에 해야 성공합니다. 즉 발사되어 ‘항해’를 해야 하고 천안함으로 적절하게 ‘유도’되어야 하고 다음 천안함을 ‘탐지’해 정확하게 폭발해야 해요.
이 1번 고물 같은 어뢰가 프로펠러가 잘 작동해 항해가 가능했다고요? 내가 사람을 시켜 모형을 만들어 봤어요. 결국 불가능하다고 증명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랬다 치자고요. 그 다음 당시 파도가 3-4미터로 높고 천안함이 피항하고 있었다는데 그 천안함으로 잘 유도가 되었다고요? 그러니 북한이 세계 최고의 기술이죠. 한국은 최근 자체 개발한다는 청상어, 홍상어 어뢰도 다 유실되면서까지 실패한 사례가 많은데. 그것도 가능했다고 치자고요. 그래서 천안함에 적절하게 유도되어 천안함 바로 밑에 왔다는 것을 탐지하고 거기서 폭발했다? 참 불가사의한 인공지능 기술이죠.

-결국, 탐지를 못 한다는 말씀인가요?
=다들 탐지를 한다고는 하지요. 그 1번 어뢰도 합조단이 그 어뢰 앞에 탐지부가 있다는 설명만 하고 아무것도 안 밝히고 있죠. 30년을 넘게 이 분야에 종사한 제가 말하는 것은, 수중에서 음향을 잡아내 이를 처리하고 탐지하는 기술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류나 난류, 해저 메아리, 해상 메아리, 다른 뱃소리, 고래 등 물고기 소리, 하물며 어뢰 자신이 내는 프로펠러 소리를 다 처리해 가며 목표물에 도착해야 하지요. 그래서 모선에서 발사된 어뢰가 다시 모선을 공격하거나 자신의 프로펠러가 내는 소리를 따라다니기도 하는 것이지요.

-과거에 그렇게 탐지해 성공한 사례가 없었나요?
=어뢰의 탐지가 아니고 잠수함에서 잠망경을 올려 목표물을 확인하고 어뢰를 발사하는 것이고 또는 소나(음향탐지기) 등으로 경험 많은 고참이 방향을 파악하고 발사했지만, 나중에 보니 큰 고래가 터져 바다를 빨갛게 물들인 사례가 있지요. 그래서 제가 그 1번 어뢰가 천안함의 공격에 성공했을 확률은 0.0000001%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어뢰에 무슨 브레이크가 있나요? 가다가 움직이는 천안함 밑에서 정확하게 스톱할 수도 없는데, 군함이 혹 발사된 어뢰를 파악하면 회피 기동하는 이유도 어뢰를 피하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그 험한 상황에서 피항하는 천안함을 아주 잘 따라가서 바로 그 밑에서 정확하게 폭발했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자택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안수명 박사
자택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안수명 박사ⓒ민중의소리

“천안함 진실 규명으로 인한 피해, 후회는 없다”

-네. 경영하시는 회사인 안테크에서도 물러나고 한국 입국도 금지되는 등 많은 피해를 받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안함에 관해 주장하신 것에 대에 후회는 없으신지?
=없어요. 단지 같은 민족끼리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을 과학적 증거 없이 비양심적으로 살인자로 모는 것에 분노할 뿐이죠. 몇십 년을 1급 비밀 취급 허가증을 가지고 미 해군에 어뢰 등의 기술을 개발해줬는데, 천안함 문제를 제기하니 회사에서 물러나라고 해서 현재는 아들이 하고 있고 저는 완전히 손 뗐지요.

안 박사는 미 해군이 추가로 준 문서를 받고 나서는 더 과격해진 모습이다. 기자는 일부에서 과거 안테크가 어뢰나 잠수함과는 관계없는 회사라는 주장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여러 건의 안테크가 수행한 계약서와 프로젝트 수행서를 보여주며 “내가 1급 비밀을 수행한 것을 다 말해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967년 대한민국 시민으로, 미국 비밀 취급 허가를 받았다. 1995년부터 10년 동안 수행한 프로젝트 하나만 해도 발주액 3천만 달러 정도의 ‘대잠수함전 프로그램 시스템 엔지리어링(Anti-Submarine Warfare Program System Engineering)’ 관련이었다. 그런 프로젝트가 이 외에도 많았다.

-박사님 아시다시피 최근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은데, 천안함 진실을 추적하시는 박사님께서는 어떤 소감이십니까?
=자식 잃은 엄마들의 통곡 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들립니다. 언젠가는 진실이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 혹여 천안함 사건처럼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천안함 진실 규명과 관련해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신다면?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해 이 사건의 진상을 꼭 밝힐 것입니다. 이번에 받은 문서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나는 끝까지 천안함의 진실을 밝힐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간단한 소책자로 천안함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있지만, 그동안 있었던 여러 사항들을 종합해 내년에는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책을 출판할 예정이고요. 진실을 규명하고 서로의 앙금을 풀고 조국은 통일되어야 합니다. 내 나이 70에 조국통일에 조그마한 이바지를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안 박사는 1946년 부모를 따라 남한에 왔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사업차 방문한 한국이 입국 금지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에 아직도 분노가 식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시 27년 된 차를 몰고 공항으로 배웅해 주고 떠나는 안 박사를 보면서 천안함 사건의 진실 규명에 한국에 있는 많은 학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리고 재미 학자나 전문가들이 나서서 싸우고 있는 현실이 떠올라 비행기로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출처 : 대동회 뉴스 네트워크
글쓴이 : 박창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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