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한마디/따온 글

[스크랩] 촛불집회를 둘러싼 색깔 논쟁을 돋보다.

DoDuck 2008. 6. 1. 05:02

 

  30일 밤에 있었던 촛불 집회는 갑자기 찾아온 쌀쌀한 날씨와 황사 때문인지, 아님 토요일에 있을 대규모 집회 때문인지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전날보다 사람이 적어 보였다. 주최측에서 3만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전날보다 적은 게 맞는 것 같았다. ( 전 날은 5만이라 발표했다 ) 나 역시 황사 때문에 목이 아파 구호는 외치지 못하고 박수만 치며 행렬 중간 자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내 앞에 걷고 있던 대학생 커플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전화 통화를 끊은 남학생이 자기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다 '근데 나 좌파야?' 그러자 여학생이 '그게 갑자기 뭔 소리야?' 하고 되물었다. '아니 내 친구한테 전화와서 촛불집회 나왔다고 하고, 너도 나오라고 했더니, 자기는 좌파가 아니라서 이런데 안 온다는 거야.' 하고 남학생이 말하자, 여학생이 웃으면서 '너가 좀 좌파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대화가 재밌기도 하여 웃음이 나면서도, 미국산 소고기 전면 개방을 반대해서 촛불 집회에 나가는 것이 '좌파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씁쓸하기도 하였다.

 

  100분 토론에 참석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촛불집회'가 자칫 '반미집회'로 변질될까봐 걱정된다고 하였다. 자기 딴에는 오해가 있을까 하여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이다'가 아니라 '이게 될 것이 두렵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오히려 이것이 의도된 주워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려'라는 표현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촛불 집회'는 '반미 집회'이고 '좌파의 집회'라고 색깔을 씌우려는 의도 말이다. 지난 한 달 간 스무 차례도 넘게 계속된 '촛불 집회'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 역시 그러한 색깔 씌우기의 의도가 엿보인다. 시위 현장에서 붙잡힌 시민들을 앉혀놓고 '배후가 누구냐고'고 캐물었다는 것은 결국 '배후 = 좌파'라는 공식을 만들어 놓고 그 각본대로 짜맞추기 수사를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일찍 돌아가는 시민들은 무고하지만, 자정 넘게까지 남은 시민들은 '좌파이다' 라는 인식 하에 연행을 강행하는 모습에서도 그런 징후가 보인다.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MB와 한나라당은 '좌파 정권 종식', '좌파 실패론'을 끊임없이 설파했다. 지난 참여 정부와 열린 우리당이 좌파였는지도 상당히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 주장대로 '좌파'라 치자. 그렇다면 '좌파'가 무슨 죽을 죄를 지은 범죄 집단인가? '좌파'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에 있으면 안 되는 집단인가? '좌파'가 공산당인가? '좌파'가 빨갱이 인가? '좌파'는 친북 세력이고 김정일 추종 세력인가? 슬프지만 확실히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많은 국민들의 영혼 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러한 일그러진 '레드 콤플렉스'를 성공적으로 자극하였다. MB와 한나라당은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을 내놓지 못했지만, '경제를 살리겠다'와 '좌파 정권을 종식시키자'라는 두 가지 구호만으로도 표를 모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러한 한나라당의 전술은 이미 '조중동'이 성공적으로 이용해 먹고 있었기에 벤치 마킹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색깔 덧씌우기와 경제 위기론 부추기기라는 두 가지 전술만으로 조중동은 자신들의 지난 죄악과 파렴치함과 부도덕함과 불법을 모조리 숨길 수 있었고, 신문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다시피,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계급 대표 회의 석상에서 귀족대표가 오른쪽에 앉고 시민대표가 왼쪽에 앉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시민 계급이 왼쪽에 앉은 것이 의도된 것인지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비극인 것은 맞다. 서양에서 오른쪽(Right)은 옳은(Right)에서 유래되었고, 왼쪽(Left)은 버려진, 남겨진(Left, Leave의 과거분사)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오른쪽의 '오른'은 '옳은'에서 파생되었고, 왼쪽의 '왼'은 '외로운, 혼자된'에서 파생되었다. 서양도 그렇고 동양도 그렇고 전통적으로 왼손은 더럽거나 불길한 손이라 하여 왼손잡이를 경원시 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수 백 년 전의 시민대표들이 왼쪽에 앉음으로써, '좌파'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참 더러운 꼴을 당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왼손잡이를 더 이상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왼손 잡이를 이상하게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애시당초부터 편견이 게재된 우파니 좌파니 하는 말을 정말이지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우파'라는 말보다는 '자유주의자' 또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말을 쓰며, '좌파'라는 말보다는 '공동체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쓴다.

 

  

  일반적으로 좌파와 우파의 구별은 '정치 또는 정치경제' 분야에서 성향을 구분하는 말이다. '자유주의'는 '자유지상주의'에서 출발하는데 '각 개인의 자유를 사회가 간섭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반대로 '사회주의'는 '공동체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각 개인들이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통한 일정한 자유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와는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다. 진보와 보수는 정치, 경제 분야보다는 '사회, 문화적' 구별 잣대로 보는 것이 맞다. '진보'는 사회, 문화적으로 규범화 되어 있거나 강요되는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빠른 변화와 적응을 추구한다. 반대로 '보수'는 사회, 문화적으로 규범화되어 있는 것이 옳을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것들을 지키는 쪽을 지지하자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보수가 '수구'와 같은 것은 아니다. 집이 무너져 가는데도 그대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 수구라면 보수는 조금은 고쳐서(보수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여긴다.

 

  나는 솔직히 우리나라 국민들 중 누가 우파인지 또 누가 좌파인지 모르겠다. 국민 대다수는 처음에 언급한 대학생들처럼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이 개념 정립을 확실히 하고 양심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성인은 대한민국에 별로 없다. '그 딴게 왜 필요한가', '이념 논쟁이 21세기에 무슨 소용인가'라는 변명만 할 뿐이다. 나는 지금 국민들이 스스로 우파인지 좌파인지 결정해서 커밍 아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 번 정도 고민은 필요하다는 말이다. 현대 민주주의 이념의 양대 축이라 여겨지는 '자유'와 '평등'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마도 이렇게 배웠을 것이다. '자유'를 중요시하면 자유주의자이고 '평등'을 중요시하면 공동체주의자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구별지음에 반대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자유'이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라는 하나의 축만 존재한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당연히 '자유'이다. 그리고 이 '자유'를 배분하거나 재분배하는 원리 중에 '방임'이 있고 '평등'이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논물'님의 카페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자유'는 곧 '경제적인 재화' 또는 '부'로 대변된다. 돈이 있어야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으며, 입고 싶은 것을 입을 수 있으며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방임된 자유'는 배분된 자유(부)가 불공평하든 엄청나게 격차가 나든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다. 곧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로 연결된다. '평등한 자유'는 배분된 자유(부)가 불공평하거나 너무 심한 격차가 나면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공동체주의나 사회주의로 연결된다. 공산주의처럼 모두 똑같이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맑시즘이 실패한 것은 바로 이런 '차별된 자유'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과의 완전한 평등을 추구했기에 너무나 이상적이었고 뜬구름 잡는 환상이었다. 그런데 공동체주의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그 내부의 모순을 지나치게 방임하지 말자는 것이다. 자유(부)의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져 '기회의 균등' 마저 사라지고 부와 신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물림되는 것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좌파'가 항상 '진보'와 궤를 이루고, '우파'가 항상 '보수'와 궤를 이룬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서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실은 최근 우리 사회의 20대 즉 '88만원 세대'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난다. 20대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경계가 모호하다.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기가 힘들다. 그러나 사회,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의 보수회귀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 증가'와 '국수주의의 강화', '여성과 장애인 등에 대한 반감의 증가', '종교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의 확산' 등에서 잘 드러난다.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파'와 '좌파',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개념정립과 건전한 정반합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최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반발과 분노의 확산은 이런 문제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가, 그것도 스스로 머슴이라고 자임한 자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고 소수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고 국민들은 이것을 막겠다는 것 뿐이다. 그게 좌파나 우파와 무슨 상관이며, 반미니 반일이니 하는 것과는 무슨 상관인가? 일부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 소수 기득권이 나머지를 다 죽이겠다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를 죽이겠다는 데 그냥 앉아 있어야 우파이고 보수인가? 자 이제 당신은 알겠는가? 왜 저들이 '보수 우파'가 아니라 '수구 꼴통'이라 불리는지를?       

출처 : 블로그 오프라인
글쓴이 : 라비벨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