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상이 평소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바로 근처의 대형 스크린이 있는 술집과 레스토랑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터져나갈 지경이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일찍 들어가려다가 건이가 떡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목욕탕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사실 건이는 목욕 와서 '어묵떡'을 못 먹으면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일찍 가셨던 날은 심하게 운 적도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축구를 보러가라며 어묵을 나무젓가락에 끼워 주십니다. 축구를 보고 싶은 마음에 얼른 건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달렸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매상이 절반도 안 된다는 아주머니의 푸념이 맴돌았지만 저도 토고와의 첫 경기가 시작될 무렵엔 흥분되어 아주머니의 어두웠던 표정은 씻은 듯이 잊어버렸습니다. 저 역시 달아오른 '월드컵 냄비'가 되어 열심히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월드컵 한다고 돈이 나와, 떡이 나와? 왜 이렇게 야단들이야" 일요일이던 18일 아침 다시 건이와 목욕탕에 갔습니다. 건이는 목욕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목욕을 좋아하는 건지 '어묵떡'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 씻고 나와서 '어묵떡'을 건이에게 사주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이제 금방 넣었으니 좀 기다리라'고 하시네요. 그날은 조금 늦게 나오셨다고 하시면서. 기다리는 동안 전 무심코 다음날(19일) 새벽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가 예정돼 있으니 또 난리가 나겠다는 말을 불쑥 내뱉았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약간 화가 나신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더니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이러다가 나라 망하겠어. 월드컵 한다고 돈이 나와, 떡이 나와? 왜 이렇게 야단들이야. 장사하기도 힘들고." 문득 토고전이 있던 날 아주머니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아주머니의 푸념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아주머니에게 월드컵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매상을 절반이나 떨어뜨리는 방해꾼이기도 하구요. 그뿐 아니라 근처 술집에서 야외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업했는데 경기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던 취객이 아주머니의 포장마차를 조금 부서뜨렸다고 하네요. 많이 부서진 건 아니지만 아주머니의 기분이 상할 만하지요. 아주머니가 하신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깟 공찬다고 돈이 나와, 떡이 나와? 왜 이리 야단들이야"라던 아주머니 말씀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월드컵 경제효과=수십조?...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2002년도에 한국 팀이 4강에 들자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경제효과가 몇 조 원 혹은 몇 십 조 원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그 엄청난 액수는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일까요? 몇 십 조원의 경제 효과가 우리에게 돌아왔나요? 살림살이가 나아졌던가요? 오히려 그런 어설픈(혹은 악의적) 계산이 대중을 마취시키면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의 경제 효과가 몇 십조(혹은 몇 백조)다'라는 환상이 그렇게 쉽게 주입된 것은 아닐까요? 아주머니는 아셨던 겁니다. 이 공놀이가 사실은 우리네 삶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으로, 경험으로 아시는 겁니다. 언제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법이지요. 이 꿈 같은 '붉은 한 달'이 지나면 삶은 다시 칙칙한 일상의 리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너무 높이 날았던 꿈이, 떨어질 때에는 더 아픈 법입니다. 물론 축제를 즐기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서구에 대한 열등감을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요. 열등감 같은 지저분한 감정을 간직할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보세요. 우리가 월드컵 축구에서 4강에 들고 혹 우승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열등감이, 혹은 집단적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신체적인 손상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가 지속되는 것)가 해소되거나 건강한 감정으로 승화될 수 있을까요? 일본팀을 멸시하고 중국을 무시하는 정서가 넘쳐나는 월드컵 관련 게시판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내셔널리즘에 기반을 둔 격정적 흥분은 다른 민족, 다른 국가에 대한 우월감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열등감은 단지 우월감으로 전화되었던 것 뿐 아닐까요?
월드컵 축제, 삶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까
(엠파스뉴스에서 읽고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원본을 옮겨왔습니다./강형구) |
'지혜와 정보, 세상 소식 > 스크랩(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칭찬하기 7가지 비결 (0) | 2006.07.03 |
---|---|
소식지의 표제시로 활용할 시들입니다 (0) | 2006.06.22 |
[스크랩] `신의 지문` 8 (0) | 2006.06.06 |
[스크랩] 저희 교사들의 잘못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0) | 2006.05.25 |
국민일보 : 청소년범죄예방연수원 개원 (김태촌원장) (0) | 2006.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