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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김흥겸의 <민중의 아버지>

DoDuck 2014. 9. 30. 01:02

 

 

 

 

  민중의 아버지

 

  詩: 김흥겸 (1961-1997)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Father of the Lowly

   - By Kim Hung-Gyum


Respond to us, O God whose tongue is cut,

Hear our prayers, O God whose ears are stopped,


God, you turn away your burned face from us,

And yet you are my only one, my dear old father.


O God, are you dead?

O God, are you in the dark weeping under a back street shadow?

Or are you thrown away like refuse in a dump?


Oh, my poor God.

God, you turn away your burned face from us,

And yet you are my only God, father of the lowly.  

 

  (영역- 주낙현 신부)

 

 민중의 아버지- 김흥겸 시와 곡,  안치환 노래

             

 민중의 아버지 - 정세현(범능 스님) 노래

 

  

 

 

늙으신 아버지

 

- 김 흥 겸

 

 

 

 

 

 

학장이 오라고 했다.
 한 신학생이 무겁게 학장실 문을 열었다. 학장실에는 차가운 눈빛만이 안경 너머로 번득일 뿐 그 눈동자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학장은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기도에 관해 말한다. 고개를 떨군 채 학장실에 불려간 신학생은 입술을 물며 새삼스레 기도론을 듣고 있다.


 "신학생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모르나?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그 큰 주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의 죄를 회계해야 한다. 그런 다음은 우리의 소원과 간구를 드린다. 그리고 나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한다."


 파이프 오르간이 좋은 음향 시설을 타고 예배드리는 이들의 마음을 움켜잡는다.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예배를 여는 순서를 맞이해 고개 숙인다. 기도자는 짧지 않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처음 입은 검고 긴 가운을 걸친 채 천천히 나와 탄식 같은 소리를 내었다.


 "기도합시다."


 모두가 눈을 감는 것이 보인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것이 뚜렷이 보였다. 기도자의 눈만은 감기지 않았다. 왼손으로 마이크를 움켜 쥐고 입을 열려 할 때 가슴은 격렬하게 고동치고 어느새 뜨거운 기운이 목젖을 막는다.


 "주여,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뜻을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실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힘들어서 못해먹겠습니다. 우리 보고 회개하라고요? 우리가 죄인이라고요? 정말 울며 불며 회개해야 할 것은 당신이고 죄인 중의 죄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 보고 하라 말고 당신이 한 번 이 땅에서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그래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해요. 그런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독재자가 백주 대낮에 수천 명을 학살하는 광주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냐고요? 학교를 보세요. 당신을 믿지 않는 선배들이 저 악의 무리들을 뚫고 도서관 유리창을 깨고 나올 때, 당신이 선택했다는 우리와,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를 시키지 말고 당신이 직접 해 보라구요. 정말 회개해야 할 것은 당신의 실패작은 우리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 바로 당신 야훼 하나님입니다."


 점점 커지는 울부짖음이었다. 경건하게 고개 숙인 채 눈을 뜨지 못하고 동요하는 신학생들과 맨 앞 줄에서 당황하는 교수들의 큰 호흡과 기침 소리가 들린다. 동요는 깨지고 한 학생이 뒷줄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강당 문을 열며 나가려다, 기도하는 친구를 돌아본다. 먼 거리지만 일그러진 얼굴에 젖은 눈빛이 보였다. 커다란 강당 문이 그 눈빛을 삼켜 버렸을 때, 이미 수십 명은 고개를 들고 강단을 보고 있었다.


 "그래요, 사실 우리는 당신의 선택을 받은 무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처럼 살다 그렇게 죽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예수의 처참한 죽음을 예배드리며 팔아먹기 위해, 또 예수의 그 고통스런 삶과 당신의 이야기를 강의하며 팔아먹고 살기 위한 무리들이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신학을, 신앙을 선택한 것뿐이라고요. 그래도 고맙지요. 당신과 예수가 있어서 그것으로 여러 사람이 2천 년 동안이나 먹고 살게 해주시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을 떴다. 그리고 앞을 응시한다. 이제 그 눈빛들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니었다. 분노와 노여움이 있었고,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반발이 있었다. 저걸 그만두게 해야 하는데 하면서 안절부절했다.


 "불쌍한 하나님, 우리 같은 것을 앞세워 하나님 나라를 만들겠다는 하나님, 당신이 그래도 절 사랑하신다면 이 길을 가다 변질하기 바로 직전에 죽여 주소서. 당신에게 간구하는 당신의 사람이 이 길을 가다 지쳐 쓰러져 돌아서려 할 때, 그 직전에 죽여 주는 잔인한 축복을 허락하소서. 그렇게 사랑하셔서 당신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기도자의 목젖에 젖어 새어나온 '아멘'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나오건만 함께 기도를 시작한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아무도 '아멘'하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해프닝이라고 하자. 그 기도 해프닝 이후 연세대 신과대학 예배 시간에 3학년들이 학번 순서로 대표 기도를 하던 관례는 없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학번 순이 아니라 학점 순에 따라서, 또 그 중에서도 기도하는 법을 알 만한 학생을 학생과에서 선정해서 결정했다.


 
기도 해프닝이 있고 신중하게 선정된 학생들이 기도를 맡게 되었을 때, 한 1학년 학생이 학생과에 가서 찬양을 드리겠다고 신청하여 기타 들고 노래를 불렀다.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로 끝나는 <군중의 함성>을 부른 후, 그는 계속해서 노래했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은 늙으신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시나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그 해는 1983년이었다.

 이 노래에서 나오는 노래들은 1980년에  광주 민중을 학살하고 권력을 장악한 악의 무리들이 제5공화국의 흡혈귀 같은 얼굴을 드러내고, 수백 명의 사복 경찰과 페퍼포그를 캠퍼스 잔디 위에 깔아놓고 학원에서마저 압제의 아성을 드높인, 1981년부터 1983년 사이에 한 줄 한줄 풀어져 나온 것이다.


 맨 마지막에 나온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늙으신 아버지였다. 그것이 작곡가가 붙인 마지막 고백이다. 원래는 늙으신 아버지가 두 번 반복되며 끝이 난다.


 "형, 늙으신 아버지 한 번 하고 마지막은 민중의 아버지야, 민중의 아버지."


 제일 무서워하던 후배 녀석이 톡 쏘아 뱉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한 학년 아래의 후배, 광주 항쟁과 학살보다 앞선 4·3 제주 민중 항쟁의 뿌리를 곱씹으며, 누가 보아도 기독인이 아니고 신학생도 아닌 그 무지막지한 녀석의 한마디에 맥없이 동의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술에 만신창이가 되면 <민중의 아버지>를 부르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
 땀 흘리시며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노동하신 건강한 아버지, 울부짖는 히브리 민중들과 함께 히브리 민중 해방과 민족 해방을 위해 이집트 제국주의와 직접 열 가지 재앙이란 폭력 투쟁을 전개하며 지도하신 아버지, 예언자들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로 하여금 반민중적, 반민족적 무리들에 대한 과감한 선전, 선동 활동을 펼치도록 명하신 아버지, 그랬던 아버지는 늙으셨다. 아주 늙어 버리셨다.


 "아버지 이것도 해 주세요, 저것도 사 주세요."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뭐예요? 도대체 아버지는 지금 무엇하고 계신 거예요?"


 아주 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들의 아버지에게 그랬다. 머리가 커지면서 아버지에게 대꾸하고, 대들며, 싸우는 청년기를 지난다. 모든 것을 다 해 주었던 거대한 아버지는 오히려 왜소하고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하고 때론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 우리가 노동하며, 애 키울 때가 되면 이미 늙고 약해진 외로운 아버지를 깊게 사랑하게 되고, 작은 기쁨이라도 드리려 한다. 이제는 우리가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아버지를 모시려 한다.


 한평생 수고하셔서 이제는 늙고 약해지신 아버지에게 '무엇을 해 달라 하는가? 무엇을 하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늙고 무기력하니 당신은 필요 없소, 죽으시오'할 것인가?

 

 대답 없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 야훼는 이미 당신의 모든 뜻을 기록했던 성서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자신의 뜻을 밝히고, 또 밝히셨다. 성서를 읽다 보면 지루할 정도로 반복하고, 반복하셨다. 그렇다. 늙으신 아버지를 우리가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춤추고 노래하며 그 뜻을 실현해 가야 한다.

 

 그렇게 모든 신학생을 대표하여 올린 기도 이후로 더욱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가깝게 다가왔다. '해달라, 해주세요, 뭐했냐?' 라는 어린아이 같은 기도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그 해 겨울 12월 24일 밤, 부모님 입장에서는 철없는 아이의 가출이자 한 사람으로서는 출가가 있었다. 낙골의 산등성이 나무 십자가가 걸린 교회를 집 삼아 올랐다.

 


 "아버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고민하고, 결단하며, 투쟁하는 벗들이 <민중의 아버지>를 부르는 모습을 간간이 본다. 낙골 공동체 속에서도 <민중의 아버지>는 함께 부르는 우리들의 고백이었다. <민중의 아버지>를 부르면 부를수록 <민중의 아버지>를 부르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된다.


 늙으신 아버지의 뜻과 혼.

 

 "주의 성령이 임하사 우리를 부르시어
 이 땅의 역사에 전위로 보내시사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묶인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진리를 선포하리
 이 붉은 산하에 민중의 붉은 피 울부짖어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사랑은
 투쟁이라
 민중 민주주의 나라
 민중 민주주의 나라
 하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이다"

 

 

 감히 <주기도문>이라 제목을 붙였다. 이 노래를, 이 고백을 읊조리며 울대 높여 부르면서 이제 그 신학생은 신학생이 아니었고, 낙골 공동체의 꾸부정한 전도사가 아니었다. 오늘도 새벽이면 일어나 아들을 주님의 종으로 써 달라고 기도하시는 한 어머니에게 그 아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것만 같다.


 전위!
 전위!
 그렇다. 전위는 한 개인의 희망과 결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실제이고, 조직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당이다, 당. 이 시대에 전위가 있다면 그들은 이 주기도문을 부를리 없다.


 우습지만 <주기도문>은 전위가 아니라면 부를 수 없고, 또 전위라면 부르지 않을 노래이다. 그것은 노래의 좌절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장 큰 좌절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은 이 노래를 부른다. 늙으신 아버지의 뜻과 혼을 되새기며.


 "얘야, 난 이제 너에게 나를 위한 것은 바랄 게 없단다. 다만 네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님의 일을 하면 소원이 없겠다."


 "어머니, 전 주님의 일을 하는 거에요. 만약 예수 안 만나고, 성서 안 읽고, 하나님 몰랐다면 이렇게 신세 조지진 않았을 거예요."


 "아니야, 넌 세상 이념과 사상을 따라 일하는 게지."


 "그래요, 전 하나님의 뜻은, 이 땅에서 민족이 해방되고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주의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라 믿어요."


 "언제 예수님이 너처럼 투쟁했니?"


 "어머니는 예수님이 참 훌륭하고 좋지요? 만약 그 예수가 어머니 아들이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좋겠나. 어머니는 예수가 당신 아들이었어도 목사 안 되고, 신학자 안 되니 하나님 일 안 한다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참내, 교회에서 매주 거룩하게 예수를 찬양하는 어머니들에게 '당신의 아들이 예수처럼 살다 예수처럼 사형 선고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면 어떨까요?' 해보세요. '아멘'할 사람 누가 있겠어요?"


 가출한 아들이 가끔 집에 들러 저녁 식사할 때 수없이 되풀이되는 이야기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독설가이신 아버지가 언성을 높인다.


 "야, 이 자식아, 저게 꼭 말문 막히면 예수님을 끌어들여. 얌마, 너랑 예수님이랑 무슨 상관 있냐? 짜식아. 그럼 예수님처럼 장가도 가지 말고 너부터 서른세 살에 죽지 그러냐. 여자는 좋아해서 쉬지 않고 연애하는 놈이 무슨…."


 "아버지, 만약 천국이 있다면 누가 갈지 어떻게 알아요?"


 "야, 임마, 천국 좋아하네. 천국 너나 가라. 마, 너 없는 데가 내 친국이야. 제발 죽어선 다시 만나지 말자. 아무리 천국이라도 너랑 같이 있으면 그게 지옥이라니깐."


 "하여간 전 기독인이예요.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일하는 것은 민족 해방 민중 민주주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예요."


 "기독인 좋아하고 있네. 여보, 저 자식 순 교활한 궤변가라니까. 얌마, 사랑 나발 불지 말고 어느 날 불쑥 와서 '아바이 동무, 자아 비판 하슈' 하지나 말아라."


 이 대목에서 어떻게 한마디를 던지냐에 따라 그날 밥상의 운명이 결정된다. 많은 시간 동안 이런 대화는 수없이 되풀이되었지만 그 시간 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 격렬한 대화, 열받아 안경은 깨지고 흥분으로 밥상이 들석인다.


 "나가 임마."


 "안녕히 계세요."


 아버지와 아들은 인연을 끊을 듯한 그런 식의 논쟁이 서로를 변화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서로의 건강과 행복에도 아무 도움이 안되기에 희화화시키는 법을 배워 갔다.


 "헛소리 나불대지 말고 밥이나 먹고 명이나 길어라."


 늙어가는 아버지, 어느새 새롭게 '할아버지'란 이름을 얻으시고만 것처럼.

 


 

 너무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수고하시다
 그렇게 늙어버리고 만 아버님
 그래서 뜻으로 혼으로 살아계신 아버님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민족 해방과 민중 민주주의의 나라를 위하여
 나아가는 길고 긴 날에
 하늘의 뜻, 역사의 뜻을
 나 몰라라 지쳐 도망치려는 때
 우리를 치소서, 죽이소서
 그리하여 힘차게 그 길로 진군하는 이들의
 사랑과 투혼 속에
 부활시키는 잔인한 축복을 내리소서
 아 -버 -님
 우리의 산 제사를 기뻐하소서.

 


 『살림』47호(1992. 10)

 

 

    

 

 

 

  민중의 아버지

    - 1980년대 절망과 탄식의 역설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목사)

 

출처 : 파랑새 울다
글쓴이 : 토란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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