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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골산칼럼제444호/일천번제와 천일기도회가 같은 것일까?

DoDuck 2007. 5. 4. 01:08

    

칼럼444  

 

 


솔로몬 왕이 일천번제를 드린 사건을 인용하여 한국교회에서 천일기도회를 실시하는 교회가 있다. 그런 거룩하고 경건한 기도를 실시하는 기도를 성경적이나 아니나 하는 판가름의 차원에서 쓰는 글이 아님을 전제하고 쓴다. 그러나 그 사건과 내용의 의미를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전달하려고 하는지 하나님의 온전한 의도를 올바르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천일 기도회를 하는 교회가 있다. 그들의 정성스러운 기도를 무시하지 않는다. 진정 너무나 귀한 기도회라고 인정하고 싶다. 그런 기도가 있기에 한국교회가 그나마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그런 기도회를 하더라도 분명하고 올바른 의미를 알고 하자는 것이다.

 

히브리어 문자 첫 글자인 알렢은 황소, 배움, 균형, 머리, 부, 힘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진리를 배우는 존재, 창조주를 향하여 배움 및 신적인 요소와 의도를 배우는 단계에 돌입된 상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되는 사상을 배우고 익혀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알렢이란 히브리어문자 중 첫 글자는 수치로 나타내는 의미 가운데 ‘1’도 되며 ‘1,000’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천 마리의 짐승을 바친 것도 되지만 진리를 깨닫는 차원에서 본다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짐승의 속성 1,000가지 이상 되는 속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이는 사건을 의미한다.

 

진리를 배우는 존재가 바로 ‘황소’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안다면 성경에 황소를 바치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의 짐승의 속성을 죽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속에 균형을 잡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생활이라고 확신한다.

 

달란트라고 하는 단어가 헬라어로 ‘달란톤’이라고 하는데 원래 단어의 원형은 ‘균형을 잡다’는 뜻으로 신약성서 당시 화폐 단위로 사용되었지만 ‘무게 단위’로 사용했던 적이 있다. 따라서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이나 재주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단어 속에 담긴 의미로 본다면 내가 갖고 있는 재주나 재능, 은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과 균형을 잡는 것이라면 나의 재주나 재능을 담보로 인기나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어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현재 기독교의 추악한 모습이 나올 수 없다.

 

솔로몬 왕이 했던 일천번제를 흉내 낸다고 해서 절대로 똑같은 상황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은 일천 번의 기도나 예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 속에 숨어있는 짐승의 속성을 죽이는 일이 일천번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내 힘으로나 방법이나 어떤 것을 동원해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내 힘으로 해보려고 별 짓을 다하고 있는 종교인 기독교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깨달아 지고 자연히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짐승의 속성을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것,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 십자가상에서 온전히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생을 얻었음을 믿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요, 내 안에 숨어있는 짐승을 죽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고자 가나안에 살고 있던 7족속을 죽이라고 하신 것도 솔로몬 왕이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과 똑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김천 직지사에 불상들이 천개가 있는데 불상들 가운데 눈이 하나 없는 불상, 팔이 하나 없는 불상, 웃는 불상, 우는 불상 등등 여러 불상들의 모습이 똑같은 것이 하나 없이 그 불상들의 숫자를 질문하면 천개가 아니고 한 개라고 한다. 그런 불상들이 모여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불교에서도 하나를 천이라고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잘못된 관습들은 성경을 잘못을 읽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마치 샤머니즘이나 타종교에서 행해지는 것과 흡사한 유형을 답습하고 있다. 타종교에서 천일기도나 천배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경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바르게 깨닫고 정신 차려야 한다.

 

 

황소를 몇 마리를 바쳤느냐? 도 중요하겠지만 천이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하나가 천이 될 수 있다. 성경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 하나라도 올바르게 깨달으면 천을 얻은 것과 같은 것이며 천 마리의 짐승을 죽인 것과 같다면 천일기도라는 행위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을 바치는 것, 내 속에 짐승의 속성을 죽어나온다. 천일동안 예수 믿고 헛 깨달았지만 오늘 하루 잠시 귀한 진리를 깨달았다면 천일을 기도한 것이 아닌가? ‘영원’이란 의미가 과거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 것을 왜 모르는가? 잊지 말라.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진리를.......

자료출처 / 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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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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