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또는 일기, 편지/오늘의 묵상

[날마다 묵상]141205「하느님의 몸; 듣기」

DoDuck 2014. 12. 5. 10:41

[날마다 묵상]141205「하느님의 몸; 듣기


(삼상3:8)[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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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기도원에 올라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시기를 갈망하며 붙들었던 말씀입니다.

'뜨레스디아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그래 한 번 가 보지' 하며 상판리 기도원에서 열린 골든TD에 참여했더랬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지요.
기도원에서 내려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실망스런 마음으로 마지막 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새벽, 천사들이 방문한다며 가족들과 프로그램에 참석토록 추천해 주신 분들을 불러 상봉의 시간을 갖게 한 그 때에, 하나님은 내가 응답해주시기를 바랐던 문제가 아닌 전혀 다른 문제에 대해 불현듯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은 그 말씀도 귀에 들려주신 말씀이 아니었지요.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나의 어떤 문제에 대해 스스로 소스라치도록 강한 깨달음이 생겼던 것인데, 그 깨달음은 마치 스스로 내 이름을 부르며 "형구야, 그 때 네가 한 짓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고 마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듯이 울려 나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터져 나온 깨달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러한 울림을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이 들었을 리는 전혀 없는 것이었지요.

그 이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그릇-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해석해주시는 목사님들의 설교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려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여전히 그때 "하나님이 내게 직접 들려주신 거야" 생각했던 그 음성이 과연 진짜 하나님의 소리였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사무엘 선지자가 부러운 사람이지요.
그리고 사무엘에게 들려온 그 소리를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임을 알아챘던 엘리도 부덕한 제사장이긴 했지만 나름 훌륭한 자질을 가졌던 분으로 생각합니다.
엘리의 그런 능력이라도 갖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숱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 이들의 이야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그 이야기들 속의 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진 대화일까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부르는 목소리를 직접 듣지 못하는 나는, 나그네를 대접하던 중에 그 안에 계셨던 하나님을 만났던 아브라함처럼 곳곳에서 만나는 이러저러한 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엇보다도 내 안에 이미 들어와 계신 하나님, 그분과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내가 들은 그 목소리들을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무슨 수로 증명하겠습니까?
오늘도 나는 묵상글을 써 나가는 나의 행위가 하나님과의 대화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단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랬고, 천국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최근에는 12월 전쟁설을 유포시켜 온 어느 여자 전도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성경의 말씀들에 비춰보면 참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얘기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까닭은 증명할 수 없는 속성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천년의 세월 동안 기록해 온 하나님에 대한증언, 성경을 먼저 읽고 해석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듣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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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효창교회에서 열린 곽건용목사님의 북콘서트 [하느님 몸; 보기, 만지기, 느끼기]에 다녀왔습니다.
목사님의 책은 아직 읽어보기 전이었지만 목사님의 세월호 관련 글을 우리교회 주보에 전재하면서 목사님과 페친을 맺고 있었기에 목사님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지요.
목사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본 기억이 난 왜 없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은 객관적인 음성-공기를 울려 귀에 전달되는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성경의 스토리도 사실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다만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던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듯이, 내면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직접 들은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구약시대에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목사님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때문에 <하느님의 몸; 듣기>라는 주제에 꽂혀서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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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에서 책을 네 권이나 구입하고 저자(각각 곽건용, 김기석, 한종호) 싸인을 받았습니다. 
선물로 얻은 책까지 모두 다섯권입니다.
잠시 읽어 본 곽목사님의 책이 무척 흥미로운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육체를 가지신 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얼굴, 하느님의 손, 하느님의 발에 대한 얘기는 있는데, 왜 하느님의 생식기에 대한 표현은 없는 것일까?"
곽목사님이 책을 쓴 동기가 [God's Phallus], Howard Eilberg-Schwartz라는 랍비가 쓴 책을 발견한 데서 시작되었답니다.
순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나님의 좆"이라고 해야 되겠지요?
매우 충격적인 제목 아닙니까?
목사님도 오랜만에 하느님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십자군 소명의식'을 느끼고 책을 읽어내려갔고, 그속에서 '하느님의 물질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네요.
이 책은 "끊임없이 물질성과 영성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하느님 인식"을 주제로 써내려간성서학 교재인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우리의 기도가 어떤 의의가 있는 것인지 시사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 읽고나면 또 한번 독후감을 전해 드리겠습니다.